고기정인턴
사직 전공의들이 의사의 '파업권'을 요구하며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17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단 비대위원장과 이혜주 전 정책이사는 세계의사회(WMA) 산하 젊은 의사 네트워크(JDN) 주최 행사에 참석해 "한국에서는 의사의 파업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한국 의사들에게는 그런 기본적인 권리가 없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열렸다. 흉부외과 3년 차 전공의였다가 사직한 이 전 정책이사는 "한국의 의료 위기는 수년간 잘못 관리된 비효율적인 정책에서 비롯됐다"며 "내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심장학과 의사가 계속 부족한 상황이다"고 주장했다.
이 전 정책이사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과 지불제도 개편 조치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조치는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상황을 악화할 우려가 있다"며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비용의 80%에 불과한 고정된 수가 기준 때문에 병원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값싼 인력인 전공의를 채용해 배출한다"며 "대부분의 전공의는 법으로 정해진 최대 근로시간인 80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심지어 100시간에 달하는 노동을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정책이사는 "병원들은 불이익을 우려해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축소해 기록하고, 이로 인해 전공의들은 추가 근무에 대한 급여를 받지 못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근로시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실상은 초과 근무를 하더라도 이를 은폐하여 법망을 피해 가는 폐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전 정책이사는 정부가 내린 업무 복귀명령이 부당하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 권리를 수행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사직한 의사들에게 업무 복귀를 명령하며 불이행 시 의사 면허를 정지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권력을 남용했다"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에 강제노동협약 위반으로 개입을 요청했고, ILO는 정부 당국에 개입(intervened)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업무 복귀명령을 유지하며 의협 비대위 간부들의 의사면허를 정지하는 등,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정책이사는 "정부는 수년간 근본적인 문제 개선을 요구하는 우리의 요구를 무시했고,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을 내놨다"며 "이에 의사는 파업할 수 없지만, 우리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부 정책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쉽지 않았는데, 어려운 시기에 여러분의 연대가 힘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전공의 집단사직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공의들은 복귀 조건으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외에도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파업권 보장, 보건복지부 차관 경질 등을 내세우고 있다. 16일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는 '복귀를 위해서는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나'라는 질문에 "수련을 하며 기소당하고 배상까지 하게 된 선배와 교수님들을 많이 봤다"며 "선의의 의료행위에 대한 면책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복귀하지 않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