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윤기자
국제유가가 강세를 띠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초긴장 모드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 중동 정세 악화로 국제유가 5개월 만에 최고치 기록하면서 원가 부담이 커지는 이중고가 덮쳤기 때문이다. 유가가 높아질수록 석유제품인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에 불리하다. 원가 비중이 70~80%인 석유화학제품은 유가와 가격이 연동되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통하지 않고 있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나프타 가격은 지난달 28일 기준 t당 716달러였고 에틸렌 가격은 t당 931달러였다. 가격 차이가 t당 215달러에 불과하다. 지난 2월 평균 262달러였던 에틸렌 스프레드가 한 달 새 18% 빠진 것이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에틸렌 판매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값으로, 화학 부문 수익성 지표로 꼽힌다.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3일(현지시간) 배럴당 각각 89.99달러, 85.43달러까지 오르며 90달러 선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둘 다 작년 10월 이후 최고치다.
국제유가는 연일 상승하고 있지만 나프타 가격 인상분이 제품 가격에 반영되지 못하면서 석유화학업계는 올해도 힘든 해를 보낼 전망이다. 국제유가는 3월 한 달 새 5.8% 상승했지만, 에틸렌 가격은 오히려 2.3% 하락했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제품 가격은 원가(유가)와 시황에 영향을 받는데, 지금은 과잉공급으로 원가 반영이 안 되고 있다"며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원료로 하는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합성수지 가격 정체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PE와 PP 가격(지난달 기준)은 전년 대비 8.1%, 5.3% 하락했다.
유가 강세는 석유화학업계의 '1분기 바닥론'에 찬물을 끼얹는 변수다. 에틸렌 생산량 기준 국내 최대 기업인 롯데케미칼의 이훈기 대표는 지난달 정기주주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작년 4분기, 올해 1분기가 바닥"이라며 "과거처럼 본격적인 회복세를 예상하기 어렵지만 하반기로 가면서 작년보다 소폭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에틸렌 설비 증설 속도가 둔화하는 데 따른 기대감이다.
하지만 유가 강세로 원료비 부담이 커질 경우 수요가 늘어도 마진을 확보하긴 쉽지 않다. 글로벌 에틸렌 수요 증가분은 작년 685만t에서 올해 715만t으로 예상된다.
김평중 본부장은 "글로벌 수급 여건을 보면 올해 1분기 저점을 지나 하반기로 갈수록 전년보다는 석유화학 시장이 나아질 것"이라면서도 "최근 유가가 다시 급등하고 공급물량도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제품 가격이 과거만큼 오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했다.
정부는 장기 부진에 빠진 석유화학업계 지원 사격에 나선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강경성 1차관 주재로 업계 간담회 열고 나프타의 관세 면제를 추가 연장하는 방안 추진하기로 했다. 나프타는 석유화학 제품 제조 원가의 70%가량을 차지한다. 이날 ‘석화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협의체’도 출범했다.
유준위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중국의 자급률 상승에 따른 전방 수요 약화와 초과공급 누적 등을 고려하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공급과잉 해소가 어려워 예전 같은 업황 호조가 재현되긴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