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슬기자
배우 김윤진(50)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반려견이 여전히 떠오른다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유별나게 강아지를 좋아하는 가족이었다"며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미국 집 문을 열면 한국과 연결돼 강아지를 보러 가는 상상을 했다는 일화도 전했다. 어릴 적 키우던 반려견의 털을 손수건에 보관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할 정도로 진심이다.
배우 김윤진[사진제공=CJ ENM]
반려견을 향한 깊은 사랑이 영화 '도그데이즈'를 있게 했다. 비행기 안에서 원작 미국 영화 '해피 디 데이'(2020)를 우연히 보고 눈물을 펑펑 쏟은 후 한국판 리메이크를 결심했다고. 그는 "둥이를 떠나보내고 얼마 안 됐을 때라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와 영화 '하모니'(2010) '국제시장'(2014) '담보'(2020) 등으로 호흡을 맞춘 제작사 JK필름이 제안을 수락하자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건너가 관계자들을 만나 판권을 구입했다. JK필름과 함께 남편 박정혁 대표의 회사 자이온이엔티가 영화 '이웃사람'(2012) '시간 위에 집'(2017)에 이어 '도그데이즈' 제작에 공동 참여했다. 김윤진도 처음으로 공동제작자로 참여했다. 그는 "한국판 리메이크 캐스팅이 가장 중요했고, 어디서 제일 잘할까 고민해보니 너무나도 뻔하게 JK필름이었다"고 했다. 이어 "윤제균 감독을 찾아가 설득했다. 원작 영화를 본 윤 감독은 '난 이런 영화 참 좋다'며 그날 바로 '오케이' 했다"고 말했다. "플랜 B, C까지 가지 않고 A에서 제작이 성사됐다"고 덧붙였다.
'도그데이즈' 스틸[사진제공=CJ ENM]
7일 개봉하는 '도그데이즈'는 성공한 건축가와 MZ 라이더 등 외로운 이들이 반려동물과 만나면서 삶에 온기를 찾는 이야기를 그린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유해진·김서형, 윤여정·탕준상, 다니엘 헤니·이현우, 김윤진·정성화의 에피소드가 교차한다. 팍팍한 삶에서 반려견을 만나 온기를 찾고, 서로가 서로에게 또 다른 가족이 되면서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그려진다. 영화 '영웅'(2022) 조감독을 지낸 김덕민 감독이 연출했다.
원작을 유영아 작가와 윤제균 감독이 한국적 정서를 기반으로 각색했다. 김윤진은 "국내 관객 정서에 맞게 등장인물 나이, 성별 등을 바꿨다. 70% 정도 각색했다. 10년 뒤 두 편을 보면 다르다고 느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불임, 입양 등 이야기가 깊이 있게 그려지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볍게 가긴 싫었다. 이런 부분을 윤 감독님이 상업영화에 맞게 똑똑하게 각색했다"고 말했다. 또 "캐릭터와 부부 설정에 저와 남편의 실제 모습을 떠올리며 써주셨다. 우리는 센 농담도 하면서 재밌게 살려고 노력하는 부부"라며 웃었다.
"이렇게 출연진이 화려할 줄 몰랐어요. 몸집이 너무 커졌어.(웃음) 제작보고회 끝나고 밥 먹다가 들어보니 우리 영화 손익분기점(BEP)이 200만명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 왜요? (제작비) 무슨 일이에요?'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초반에는 100만, 150만명이면 그래 알차게 '우리 잘했어' 하는 해피엔딩을 그렸거든요. 특수효과(CG) 등이 많이 안 들어가도 12시간 촬영, 보험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예전에는 20~30억짜리 영화가 이제 60~70억이 기본이니까. 손해 보는 사람 없이 모두 웃으며 헤어지는 게 목표죠."
배우 김윤진[사진제공=CJ ENM]
인터뷰 테이블에 앉은 제작자 김윤진은 표정부터 달랐다. 그는 "배운 게 많았다. 배우로 25년 넘게 일했지만,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새로운 면모를 봤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제작진한테 잘해주고 싶다. 예전에는 대본을 받고 출연 결정하기까지 일주일 안에 답변을 드리려고 했는데, 그것도 길다. 제작하는 입장이 돼보니 '대본 하나 읽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싶더라. 앞으로는 3일 안에 답해줘야겠다"며 웃었다.
김윤진은 원조 '월드스타'로 꼽힌다. 미국 채널 ABC 드라마 '로스트'(2004)에 출연하며 얻은 수식어다. 지금이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채널의 발달로 '해외 진출'이라는 말이 무색해졌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필을 돌리며 발로 뛰던 때가 있었다. 그는 "편안하지 않았다. 안면마비가 올 정도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제 기사를 보고 '할리우드에 진출한대?'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까요? 국내 배우의 할리우드 작업이 일상적인 일이 됐잖아요. 특별한 일로 다뤄지지 않죠. 만감이 교차해요. '로스트' 때는 동양 배우가 드라마에 많지 않았죠. 한국말을 써도 '한국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는 질문을 듣지 않아도 되니.(웃음) 싸이, 방탄소년단의 나라로도 잘 알려져서 좋죠.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은 선물이죠. 당시는 제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자랑스럽고 고맙지만, 내일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지금도 수없이 오디션에 도전하는 중이에요. 계속 떨어지더라도 도전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