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종기자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최근 홈페이지에 "특정 모델은 2024년부터 연방 정부의 세액공제가 줄어들 수 있다"며 "올해 말까지 차량을 인수하라"는 안내 문구를 띄웠다. 미국 정부가 지난 12월 1일 발표한 해외우려기관(FEOC, Foreign Entity of Concern) 지침을 의식한 조치다. 이 지침 발표 이후 포드는 자사의 머스탱 마하e 전기차가 내년부터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고 공식화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에 따라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에 대해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다만, FEOC로부터 조달한 배터리 부품(2024년부터)이나 핵심 광물(2025년부터)을 조달한 전기차는 앞으로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테슬라 일부 모델과 포드 머스탱 마하e에는 중국 CATL이 생산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들어 있다.
FEOC 지침은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숨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 다양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국내 기업들엔 공급망을 재편하고 지분율을 조정해야 하는 추가 부담이 생겼다.
미국 정부는 2022년 8월 IRA를 제정하면서 FEOC를 출처로 하는 핵심 광물과 부품을 포함하는 전기차는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FEOC에 대한 세부 지침 발표를 계속 미루면서 자동차 및 배터리 업계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미국 자동차 기업들의 이익 단체인 자동차혁신연맹(Alliance for Automotive Innovation), 현대차·도요타 등이 속한 오토드라이브아메리카(Autos Drive America) 등 각종 단체는 그동안 물밑으로 로비전을 벌였다. 국내 정부 부처도 여러 차례 미국 정부 관계자와 만나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번에 발표된 FEOC 지침은 예상보다는 규제 강도가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친환경 전기차 보급을 강조했었다는 점, 현실적으로 배터리 소재 및 부품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점 등을 고려해 FEOC 세부 지침이 반도체법(CHIPS Act)보다 완화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반도체 분야와 대등한 수준의 강도 높은 대중 견제책이 담겼다. 전기차의 확산보다는 첨단 산업에서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미국 정치권의 압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조 맨친 상원의원 등은 IRA 보조금이 중국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FEOC 지침은 미국 에너지부와 재무부가 함께 발표했다. 에너지부는 'FEOC에 대한 해석' 지침에서 '해외 기관', '우려국 정부', '관할권', 소유, 통제 또는 지시받는 대상' 등 법상 핵심 용어를 명확히 규정했다. 재무부는 에너지부의 FEOC 정의를 적용함에 따라 실무에서 발생하는 절차와 관련된 지침을 발표했다. 미국법상 'Entity'는 자연인과 법인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우리말로는 '기관'이나 '집단'으로 번역된다.
우선 에너지부는 외국 기업이 해외 우려국의 관할관에 설립됐거나 소재하거나 주요 사업장을 두고 있는 경우 FEOC로 규정했다. 우려국 정부에 의해 '소유, 통제, 지시'를 받는 경우도 FEOC로 간주된다. '소유, 통제, 지시'를 받는다는 것은 크게 ▲ 우려국 정부가 지분의 25% 이상을 소유하거나, ▲우려국 정부가 '유효한 통제권(effective control)''을 확보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우려국 정부'는 중앙 정부, 지방정부, 중앙·지방정부의 기관 및 기구, 우려국의 집권·지배 정당과 전·현직 고위 정치인(직계가족 포함)으로 정의했다. 우려국은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을 의미하며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중국을 지칭한다.
지침에는 구체적으로 중국 정부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현직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회, 중앙정치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국 공산당 전국 대표 회의 전·현직 위원을 포함한다고 명시했다. 또 해당 고위 공직자의 직계가족(배우자, 부모, 형제자매, 자녀 및 배우자의 부모 및 형제자매)까지 '우려국 정부'에 해당한다. 중국 민간기업이라 하더라도 이 규정에 의해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 정부는 이러한 우려국 정부가 이사회 의석수, 의결권, 지분의 25%를 보유하는 경우 이 기관을 '소유, 지배, 지시'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FEOC로 간주한다. 모 회사가 자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2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도 이에 해당할 수 있다.
또 우려국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라이선스 계약 또는 기타 계약을 통해 핵심광물, 배터리 부품 또는 소재의 생산 전반(채굴·가공·재활용·제조·조립)에 대해 '유효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소유, 통제 또는 지시'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조항은 직간접적 지분 제휴가 없더라도 FEOC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이번 가이던스에서는 FEOC 정의뿐 아니라, FEOC 이행 방식도 규정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는 핵심광물 추적을 위한 시스템을 2026년 말까지 구축해야 한다. 해당 기간까지는 조달선을 추적하기 어렵고 부가가치가 적은 미소 광물(최대 2%)에 대한 추적 인증은 제외된다. 미소 광물 리스트는 추후 공개될 전망이다.
FEOC 규정은 배터리 부품의 경우 2024년 1월 1일부터, 핵심 광물의 경우 2025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이번 FEOC 지침과 FEOC의 정의에 대해서는 관보게재일(12월 4일)로부터 30일, 이행방식에 대해서는 45일간 의견수렴이 있을 예정이다.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꼼꼼하게 설계된 듯한 FEOC 세부 지침도 면밀히 살펴보면 곳곳에 허점이 발견된다.
먼저, FEOC로 간주되는 '우려국 정부 25% 지분 이상' 조항이다. 중국 정부가 자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경우 지분율이 50% 미만이면 비례의 법칙을 적용하기 때문에 지분율을 조정하면 얼마든지 FEOC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미 에너지부는 지침에서 25%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시나리오별로 제시했다. 예를 들어 A 기업이 B기업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B가 다시 C 기업의 지분 25%를 보유하는 경우 A가 '우려국 정부'라면 B, C 모두 FEOC에 해당한다. A와 B를 동일 기관으로 봤기 때문이다.
'우려국 정부' A가 B의 지분 25%를 보유하고, B가 C의 지분 50% 를 보유하는 경우에도 B와 C는 FEOC에 해당한다. 지분 50%를 넘으면 '동일 기관'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우려국 정부' A가 B의 지분 25%를 보유하고, B가 C의 지분 40%를 보유하는 경우 A와 B는 FEOC이지만 C는 FEOC에서 벗어나게 된다. B가 C의 지분을 50% 미만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A의 C에 대한 간접 지배력은 비례의 법칙에 의해 10%만 보유(25% X 40%)하는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FEOC 간주 규정 중 '유효한 통제권'도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FEOC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우려국 정부가 라이선싱이나 계약을 통해 '유효한 통제권'을 보유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미 에너지부는 세부적으로 ▲핵심 광물이나 배터리 부품 생산량과 시기(생산 중단 포함)에 대한 결정권 ▲생산한 제품을 어떤 기관이 사용할지에 대한 결정권 ▲생산지에 대한 접근 권한 ▲핵심 제품에 대한 유지·보수·운영의 배타적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명시했다.
또 ▲우려국 정부에 의한 수출통제 또는 지적재산권 사용 제한에도 불구하고 생산에 필수적인 장비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거나 지식재산권과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보유하는 경우에도 FEOC로 간주된다.
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위와 같은 권한을 상대 기업에 전적으로 양도할 경우에는 FEOC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 에너지부는 지침에서 입증만 할 수 있다면 "많은 계약과 라이선싱 합의가 이런(FEOC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언론들이 이 조항에 주목하는 것은 포드 자동차와 CATL간의 합작회사 설립건 때문이다. 올해 초 CATL은 지분 참여 없이 라이선스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포드와 미국 내에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 정치권에서 우려가 잇따르자 FEOC 세부 지침이 나올 때까지 이 계획을 보류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미국 내에서는 새 지침이 포드자동차와 CATL의 제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포드가 합작사의 실질적인 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유권 해석을 받으면 FEOC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의 리암 데닝 칼럼니스트는 "포드는 CATL의 노하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새로운 지침은 이를 암묵적으로 축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화당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도 "이 지침이 포드와 CATL간 협정을 적격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결정은 중국 기업과 협력 관계를 갖고 있거나 계획 중인 완성차 업체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다"고 해석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왔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도 "중국에 대한 견제 장치이기도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미국 공급망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포드는 아직 공식적인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수요가 확대되는 가운데 포드-CATL 합작사가 설립된다면 이와 유사한 형태의 계약이 뒤따를 수 있다. 향후 미 정치권에서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이 확산될 경우 지침이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FEOC 지침으로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명확해진 만큼 중장기적으로 한국 배터리 기업에게는 기회가 된 것이 맞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국내 배터리 산업에서 지나치게 높은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숙제를 동시에 안게 됐다. 특히 중국과 다양한 형태로 합작사를 설립하거나 설립 계획을 추진하던 곳들은 지분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합작사에서 중국 측 비중이 25% 이상인 경우에는 FEOC로 간주될 수 있다. LG화학, 에코프로 포스코 그룹 등 국내 기업들은 중국 기업과 합작 기업 설립계획을 발표했다.
포스코 그룹은 지난 6월 중국 CNGR과 니켈 정제 법인을 설립키로 했다. 포스코홀딩스가 합작사 지분 60%, CNGR이 40%를 갖는 구조다. 포스코퓨처엠과 CNGR의 전구체 합작사는 중국 측 지분 비율이 80%에 달한다. 포스코그룹은 또한 화유코발트와 전구체 및 음객재 공장을 포항에 설립하기로 한 상태다. 포스코홀딩스는 인도네시아 내 중국 기업들에 지분을 투자해 니켈 매트 및 니켈 중간재(MHP)를 조달하고 있다.
SK온과 에코프로는 중국 거린메이(GEM)와 새만금에 전구체 합작공장을 짓기로 했다. SK온과 에코프로가 51%, 거린메이가 49%의 지분을 갖는 조건이다. 3사는 또 인도네시아에 니켈 MHP를 생산하는 합작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LG화학도 화유코발트와 전구체, 양극재, 리튬을 생산하는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화유코발트와 중국에 사용후 배터리 라사이클링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정부의 FEOC 세부 규정 발표로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국내 업체들은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합작사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지분을 쉽게 포기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