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리기자
정부가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서 대기업 참여 제한을 풀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기업들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대기업은 수익성 낮고 골치 아픈 사업을 떠넘긴다는 반응이다. 반면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라 우려한다. 한때 '1원 입찰'이 등장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던 공공 SW 사업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조만간 공공 SW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제도 개선안을 발표한다. 최근 행정망 먹통 사태가 잇따르자 10년 만에 빗장을 푸는 것이다. 당초 대기업 참여 기준을 사업 규모 1000억원 이상으로 잡았지만 700억원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작 족쇄가 풀린 대기업은 시큰둥하다. 돈이 안 되고 정부에 끌려다녀야 하는 공공사업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나서려면 중소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하는데 마땅한 파트너사를 찾기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대기업 참여를 막은 제도가 취지와 달리 기술 개발 없이 공공사업만으로 생존하는 좀비기업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대형 IT 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역량이 부족한 기업과 손잡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만 떠안는다"며 "대기업이 나서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보는 진단 자체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중소기업은 그나마 남은 텃밭마저 빼앗길 것으로 본다. 원가가 낮은 사업에 대기업이 뛰어들면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구조로 돌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중견 IT 서비스 업체 VTW 대표인 조미리애 중소SI·SW기업협의회장은 "중소기업이 유일하게 진입할 수 있는 공공시장이 닫히면 안 그래도 어려운 산업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하청업체로 전락하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우려했다.
한때 공공 SW 프로젝트는 인기 있는 사업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업을 따내기 위해 입찰가격 1원을 써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손해를 봐도 일단 사업을 따내고 보자는 기업들이 많았다. 이런 비상적인 일이 벌어진 이유는 신기술을 적용하고 사업 레퍼런스를 쌓을 기회로 봤기 때문이다. 그랬던 공공사업 인기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매년 절반에 가까운 사업이 유찰되는 상황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때 전체 정부 예산에서 2~3%를 차지했던 공공 SW 사업 비중은 1% 아래로 떨어졌다. 저가 발주가 만연하다 보니 할수록 손해 보는 사업이라는 말도 나온다. SW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공공사업 비중이 20% 이상인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0.5%에 그쳤다. 반면 비중이 20% 이하인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6%였다. 코로나 시기 개발자 몸값이 확 오른 영향도 있다.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정부 투자가 정체됐고 개발환경도 나빠졌다"며 "공공사업에서 레퍼런스를 쌓아 나갈 수 있는 민간사업이 별로 없기 때문에 예전 같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사업 진행에서도 주먹구구식 관행이 짙어졌다. 과거 정부는 기업에 사업 제안요청서(RFP)를 배포하기 전에 사전규격(RFI)을 공개했다. 본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관련 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다. RFI를 토대로 RFP를 작성하는 게 관행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대신 사업 수행 과정에서 과업을 추가하는 게 일상적이다. 조 회장은 "예산은 그대로인데 일단 발주해놓고 계속 수정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정부에서 사업을 계약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너무 낙후돼 있다"고 말했다.
결국 업계에선 참여 주체가 아닌 사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하더라도 먹통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업 예산 현실화다. 프로젝트 설계나 계약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컨대 미국 연방조달청에선 하이브리드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모듈은 예산 범위 내에서 확정 계약을 하고 이 외 추가 작업은 나중에 정산한다. 안홍준 한국SW산업협회 산업정책실장은 "일단 공공 시장에서 이윤을 내는 기업이 나와야 연구·개발(R&D) 인력을 많이 투입하고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