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2400조 채권매입 중단…'정책 엇박자 차단'

PEPP 중단으로 '추가 긴축' 신호
내년 금리인하 앞서 양적긴축 시사
"정책 엇박자 막기 위한 조치"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1조7000억유로(약 2400조원)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 조기 중단을 시사했다. 금리인상에 이어 양적 긴축을 언급하며 긴축 기조를 이어갈 뜻을 밝힌 것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내년 금리인하에 앞서 양적 긴축을 완료하겠다는 의미라며 '정책 엇박자'를 막기 위한 사전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유럽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ECB가 채권 매입 프로그램(PEPP)을 당초 계획보다 일찍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 문제는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ECB) 집행위원회 내부 논의와 검토를 거치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 (PEPP 조기 중단) 제안을 재검토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PEPP는 ECB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을 위해 가동한 시중 유동성 공급 장치다. 국채 등 장기 채권을 총 1조7000억유로 매입했고, 만기가 돌아오면 계속 자금을 투입했다. 당초 내년 말까지 프로그램을 가동할 예정이었으나, 라가르드 총재가 가동 시점 조기 종료를 시사한 것이다.

그간 ECB 매파(통화긴축 선호) 사이에서는 PEPP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ECB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국채 매입으로 시중 유동성을 확대, 양적완화 정책을 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ECB는 지난해 7월부터 금리인상을 시작해 0%였던 금리를 올 9월 4.5%까지 끌어올린 뒤, 지난달 처음으로 동결했다. 외신은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은 통화정책에 있어 기준금리 인상을 넘어 추가 긴축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내년 금리인하를 전제로, 정책 엇박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적 완화 중단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리 인하를 시작한 후에 양적 긴축을 단행하는 엇갈린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UBS 은행의 라인하르트 클루스 유럽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PEPP 재투자를 몇분기 앞당겨 종료하더라도 시장은 매우 놀라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하기 전에 양적 긴축을 선언하지 않는다면 시장과의 소통이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ECB는 향후 채권 매입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내년 4월부터 6개월간 채권 재투자 규모를 절반으로 줄임으로써 채권 포트폴리오가 내년 말에는 870억유로, 2025년말에는 2580억유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유럽 경제가 둔화하고 있어 PEPP 조기 종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ECB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사이에서는 유럽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양적 긴축에 나서는 것은 '1차 방어선'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ECB가 보유한 채권 중 유로존 전체 투자적격 채권의 30%에 달한다.

이탈리아 은행인 유니 크레딧의 프란체스코 마리아 디 벨라 채권 연구원은 "ECB의 양적 긴축으로 시장이 흡수해야 할 채권은 증가할 것"이라며 "ECB가 PEPP 포트폴리오 중단을 결정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1팀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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