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조슬기나특파원
"사탕값이 왜 이리 비싸죠?" 미국 뉴욕에서 핼러윈 주말을 앞두고 이웃 아이들을 위한 초콜릿과 사탕을 사러 갔다가 말 그대로 '멈칫'했다. 현재 거주 중인 빌딩에서는 핼러윈 당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에 참여할 세대를 모집하고 있는데, 올해는 마녀, 스파이더맨으로 분장한 어린이들과 인사를 나눠보는 게 나의 핼러윈 계획이었다. 하지만 겨우(?) 사탕과 초콜릿에 이 가격표가 붙는 게 맞는지, 대체 몇 봉지나 사야 할지 슈퍼마켓 한복판에 서서 고민에 빠져버린 것이다. 옆에서 함께 사탕을 고르던 한 여성도 "더 비싸졌다"고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핼러윈을 앞두고 사탕, 초콜릿값이 예년 같지 않다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미 CBS방송은 이러한 분위기를 짚으며 "올가을 가장 으스스한 일은 핼러윈 사탕에 지불해야할 돈"이라며 "인플레이션 탓"이라고 보도했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9월을 기준으로 한 사탕 및 껌 가격은 전년 대비 7.5% 상승한 것으로 집계된다. 2021년과 비교하면 무려 20% 뛰었다. 좀처럼 꺾이지 않는 미국의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더라도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상승세다.
전미소매연맹(NRF)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서도 올해 미국인들의 핼러윈 관련 지출액은 122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가운데 사탕, 초콜릿 등에 사용되는 금액은 전년 대비 16%가량 늘어난 36억달러로 추산됐다. 가구당 사탕 구입에 지출하는 평균 비용 전망치는 지난해 30달러에서 올해 35달러로 뛰었다. 뉴저지 북부에 거주하는 한 주재원 가족은 "학교 행사에 구색만 맞추는 양만 구입했는데도 300달러 이상 들었다"며 "아이들의 기쁨을 위한 것이라면 충분히 (이 돈도) 쓸 수 있지만, 올해 특히 더 비싸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격 급등 배경에는 핼러윈 상술보단 원재료 가격이 먼저 손꼽힌다. 기상악화에 따른 작황 문제로 설탕 및 대체 설탕, 카카오 등 주요 원재료의 가격이 들썩인 여파가 반영됐다는 진단이다. 미국의 경우 멕시코로부터 설탕 수입을 상당 부분 의지하는데, 올해 해당 지역의 작황은 15%이상 감소했다. 원당 가격은 파운드당 약 27센트로 2011년 이후 최고치로 뛰었다. 서아프리카지역에서 확보하는 코코아의 경우 기상악화의 여파가 더 심각하다. 카카오는 최근 미터톤 당 3800달러 이상에 거래돼 197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UCLA의 크리스토퍼 탕 교수는 현지 언론에 "인플레이션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 포장지부터 설탕, 카카오 등 원재료까지 결과적으로 (사탕과 초콜릿 가격을 결정하는) 모든 요소가 상승했다"고 짚었다.
여기에 고물가를 앞세워 지난 1년간 허쉬를 비롯한 식품회사들이 잇달아 가격 인상을 단행해온 탓도 크다. 허쉬는 지난 분기 북미 지역에 판매되는 사탕가격을 11% 인상했다고 발표했다. 사탕 한 봉지를 위해 10달러를 쓰다가, 11달러를 쓰는 것은 큰 변화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트릭 오어 트리트를 준비하는 대부분의 가정은 수십봉지를 구입하고 있기에 인플레이션을 고스란히 실감할 수밖에 없다. 사탕 구입을 앞둔 서머 씨는 "가격이 많이 오른 건 안다"면서도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데, 넉넉히 살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사탕 한 봉지에서조차 인플레이션을 체감하는 와중에, 미국 내 핼러윈 지출은 또 한 번 새로운 기록을 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아직 사탕을 구입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