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빠진 '맹탕' 연금개혁…나이따라 보험료 차등한다

보험료율 인상 방향성 제시
구체적 숫자·시나리오 빠져
복지부 "국회·공론화 과정 거치겠다"

정부가 모수개혁을 뺀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관한 내용도 제외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국회 및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설명이지만, 연금개혁을 회피하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과 달리 선거를 앞두고 맹탕 개혁안을 내놨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7일 보건복지부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5차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다. 종합운영계획은 향후 국민연금 재정전망과 연금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기금운용계획 등을 담고 있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복지부 장관이 5년마다 마련한다.

이번 계획안에는 구체적인 모수개혁 내용이 빠졌다. 모수개혁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수급시작연령 등의 조정을 의미한다. 앞으로 국민들이 받게 될 연금액과 기금고갈 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연금개혁의 핵심으로 꼽힌다. 정부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은 의견이 다양한 만큼 특정안을 제시하기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했다”면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국회와 함께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수준을 결정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주문해왔던 ‘연금개혁 완성판’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연금개혁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지난해 12월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도 “연금 이야기를 꺼내면 표가 떨어진다고 해서 지난 정부 땐 이야기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이번 정부에서는 연금개혁 완성판이 나올 수 있도록 지금부터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부가 구체적인 연금개혁안을 내놓는데 실패하면서 ‘맹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숫자가 담기지 않은 계획안은 비판받을 것”이라면서 “모든 연금개혁은 정부가 주도를 했을 때만 실행이 됐고, 최소한의 안을 정부 주도로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꼬집었다.

"보험료율 인상은 불가피...세대별 형평성 고려해 인상속도 차등화한다"

다만 보험료율에 대해서는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방향성을 확실히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했을 때 소득대체율은 40%대로 유사하지만 보험료율은 9%로 OECD 평균보다 절반 수준으로 낮다는 게 근거다. 인상 수준은 공론화를 통해 구체화하기로 했는데 급격한 인구변화를 고려하기로 했다. 또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해 연령그룹에 따라 보험료율 인상속도를 차등화하기로 했다. 예컨대 보험료 5% 인상을 가정할 경우 40대와 50대그룹은 5년 안에 1%씩를 올리는 반면, 20대와 30대 그룹은 15년에서 20년 안으로 5% 인상을 감당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매년 올려야 하는 인상폭이 연령별로 차이가 발생한다.

구체적인 소득대체율(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 조정안은 빠졌다. 국민들이 받는 연금액을 올리는 내용의 시나리오는 제외됐다는 뜻이다. 정부는 국회와 함께 공론화 과정을 통해,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등 다층노후소득보장 틀 속에서 구조개혁 논의와 연계해 검토한다는 설명이다. 소득대체율을 올릴 경우 미래 세대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수급개시연령 조정안도 담기지 않았다.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대를 뒤로는 미루는 방안은 우선 뒤로 미뤘다. 정부는 고령자 계속 고용 여건이 성숙한 이후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타 연금제도와 정합성 제고방안과 함께 수급개시연령 조정을 논의키로 했다. 이스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은퇴 이후 소득공백문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정년연장과 계속고용 논의가 함께 가야 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수익률은 1%포인트 이상 높여 연금 기금 안정성을 높이기로 했다. 수익률 상향을 위해 해외투자 비중을 2028년까지 약 60%까지 확대하고, 전문성 제고를 위한 의사결정 구조 개편도 추진한다.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자산배분 권한을 기금운용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전문가 중심의 기금운용본부로 이관하기로 했다.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민연금법 규정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측 위원과 근로자 대표 등이 주로 참여하고 있어, 전문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되어 왔다. 또 사모대출 등 중위험중수익 성격을 지니는 신규 자산군도 다변화한다는 계획이다.

재정안정성에 방점을 찍은 만큼 정부는 앞으로 현재의 확정급여형(DB)으로 운영되는 기금을 향후 확정기여방식(DC)으로 전환하기 위한 논의도 시작한다는 입장도 담았다. 확정급여형은 급여 수준이 미리 정해져 있는 구조인 반면, 확정기여형은 개인이 납부한 보험료와 가입기간에 비례해 급여가 지급돼 재정안정에 보다 유리한 제도로 꼽힌다. 하지만 손실위험은 국가가 아닌 개인이 부담하게 되는 구조다. 또 정부는 수급자의 실질적 소득을 제고하기위해 보험료 지원 대상을 저소득층 지역 가입자로 넓히고, 출산과 군복무 크레딧 제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