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쇼크웨이브](35)'에루샤' 올라도 아이폰 값 안오르는 이유

애플, 예상과 달리 아이폰15 가격 동결
자체 개발 칩으로 가격 인상요인 흡수
애플 A칩, 성능 뛰어나도 경쟁사에 비해 50달러 이상 저렴
아이폰15, 물가 상승고려하면 가장 저렴한 수준
삼성도 자체 개발칩 다시 적용해야 수익 늘릴 수 있어

편집자주[애플 쇼크웨이브]는 애플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며 벌어진 격변의 현장을 살펴보는 콘텐츠입니다. 애플이 웬 반도체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애플은 이제 단순히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고 스티브 잡스 창업자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노력 끝에 애플은 모바일 기기에 사용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설계해 냈습니다. PC 시대에 인텔이 있었다면, 애플은 모바일 시대 반도체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망 위기와 대규모 반도체 생산라인 설비 투자가 이뤄지는 지금, 애플 실리콘이 불러온 반도체 시장의 격변과 전망을 꼼꼼히 살펴 독자 여러분의 혜안을 넓혀 드리겠습니다. 애플 쇼크웨이브는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40회 이상 연재 후에는 책으로 출간합니다.
따옴표"명품이라고 하는 것 중에 오르지 않는 건 아이폰뿐인 것 같아요."

'명품'은 가격표에서 자유롭기 마련이다. 명품의 대명사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가방 가격은 지금이 제일 싸다는 말을 듣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애플 아이폰이다.

필자도 아이폰15프로맥스를 구매했다. 한국에서의 가격은 올랐지만, 미국에서 구입했던 아이폰13프로맥스 256GB와 비교하면 같은 용량임에도 미국 달러 기준으로 값이 그대로였다.

최신 아이폰이 발매될 때마다 언론, 유튜버 등이 수많은 예상, 분석 기사를 쏟아내곤 한다. 이중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 아이폰15가 티타늄을 소재로 사용한 것, 기존 라이트닝 충전 단자 대신 USB C 단자를 처음 도입한 것은 예상대로였다.

애플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아이폰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칩, 디스플레이, 5G, 고급 하우징, 기본 메모리 용량 증가 등을 추가해 왔다. 성능은 계속 높아져 왔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가격표다. 미국 기준 기본 '799', 프로 '999'라는 숫자는 변화가 없었다. 애플 정도의 시장 지배력과 고객 충성도라면 매출 확대를 위해 가격을 올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2017년 아이폰 발표장의 화면에 아이폰X의 가격이 공개되고 있다.

아이폰 프로의 가격은 2017년 이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최고가 제품인 아이폰15프로맥스 기종만 기본 메모리 용량을 다른 아이폰에 비해 두배인 256GB로 적용하며 100달러를 올렸지만 같은 용량인 아이폰14프로맥스와 비교하면 동결이었다.

애플은 2017년 아이폰 판매 10주년을 기념하는 아이폰X를 출시하면서 999달러라는 가격표를 달아 소비자와 경쟁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함께 선보인 아이폰8이 699달러에(미국 각주의 세금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은 700달러 중반에 아이폰을 구입할 수 있다) 판매된 것을 고려하면 약 50%에 가까이 비싼 프리미엄폰의 등장이었다.

아이폰 15 시리즈 국내 정식 출시일인 13일 서울 중구 애플스토어 명동점에서 고객들이 제품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이폰X는 아이폰에서 홈버튼이 사라진 시발점이다. 동시에 스마트폰 가격 인플레이션을 불러온 장본인이라는 비판의 대상이다.

6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아이폰15의 가격은 이번에도 동결됐다. 아이폰15프로의 값은 999달러다. 6년 연속 동결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고물가 시대에 값이 안오른 것은 아이폰뿐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물론 이는 미국에 한정된 상황이기는 하다. 애플은 지난해 원·달러 환율 급등을 이유로 한국 내 아이폰 가격을 인상했다. 약 1400원의 환율을 적용했고 올해 환율이 하락했음에도 가격을 유지했다.

한번 올린 가격을 내리는 기업은 드물다. 명품이라고 불리는 제품군은 더욱 그렇다. 애플은 휴대폰, PC, 에어팟 등 제품군별로 다양한 환율을 적용 중이다.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가장 큰 아이폰에 가장 높은 환율을 적용한다.

2021년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7%에 달했다. 2022년에는 무려 7.9%다. 신형 아이폰 판매가 시작되는 2022년 9월 상승률은 무려 9.1%에 이르렀다.

아이폰 값 동결은 미국 자동차 가격 상승이 물가 상승률 급등의 핵심 요인으로 부상했던 것과 대비된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내 신차와 중고차 가격은 수직 상승했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차량 생산이 어려워지고 수요가 늘면서 신차 값도 치솟았고 중고차 값이 새 차보다 비싸지는 경우도 등장했다.

미국 물가 상승률을 적용한 달러 기준 아이폰 가격 변화. 적색은 아이폰 기본형, 녹색은 플러스, 파란색은 프로맥스 모델이다.

휴대폰의 상황은 다르다. 스마트폰, 휴대폰은 현대인에는 필수적인 소비재다. 미국 물가 조사에서도 약 0.439%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과거와 비교해 전화기 교체 시점이 늦어지고 있다고 해도 컴퓨터와 비교해 휴대폰을 바꾸는 횟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아이폰15의 값은 2017년 이후 물가 상승분을 고려하면 가장 저렴하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퍼펙트레크에 따르면 물가 조정을 반영한 첫 아이폰의 가격은 732달러다. (첫 아이폰의 최초 판매가는 499달러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이 전화기, 인터넷 커뮤니케이터, 아이팟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가격은 아이팟보다 조금 비싼 499달러라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당시 대부분의 언론과 소비자들은 이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다). 물가 변화 반영시 아이폰15보다 더 싼 모델은 최초의 아이폰뿐이다. 두 번째 아이폰3G도 832달러다. 2020년에 판매된 아이폰12는 가장 비싼 943달러로 평가됐다. 이는 2021년 이후 물가가 급등한 것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첫 프로 모델인 아이폰X 값은 물가 변화 반영시 1248달러로 평가됐다. 2018년에 등장했던 Xs 맥스는 역사상 가장 비싼 1333달러로 파악됐다.

최근의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을 감안하면 아이폰 값은 과거에 비해 40~50달러가량 저렴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쯤 되면 물가 상승으로 고민이 많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애플은 구세주와 같은 존재다.

웨드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아이폰값을 동결한 것이 소비자에게는 놀라운 거래라고 파악했다. 아이브스는 "애플은 원한다면 훨씬 더 비싼 가격표를 붙일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프리미엄 폰의 특성상 가격을 올리더라도 살 사람들은 사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체 스마트폰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애플이 가격 상승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가격을 동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빠르면 2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대비 하락세였다.

애플이 수익성을 확보하면서 아이폰값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의 가장 큰 요인은 핵심 칩을 자체 개발하였기 때문이라고 분석가들은 입을 모은다. 아이브스는 애플이 아이폰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로 자체적으로 핵심 칩인 'A'칩을 설계하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애플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A17프로와 A16칩을 아이폰15프로와 아이폰15에 사용한다. A17프로의 경우 TSMC의 3나노 공정을 이용한다. 제조 수율이 낮아지면서 칩 가격이 상승하고 덩달아 아이폰값도 대당 200달러 정도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애플은 이런 예상을 비웃듯 가격표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애플이 삼성의 디스플레이, 소니의 카메라 센서, 퀄컴의 통신 모뎀 등 핵심 부품은 외부에서 공급받지만, AP는 TSMC가 제조하더라도 외부에서 사 오는 것에 비해 저렴할 수밖에 없다. 애플이 통신 칩도 자체 개발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른 상황은 삼성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이 자체 개발한 엑시노스의 역할이 중요하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AP 구매 시 엑시노스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가격 협상에서 중요한 요인이다. 삼성이 갤럭시S23에 엑시노스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S24에 다시 엑시노스를 사용하려는 움직임도 이런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

IT전문매체 기즈모도는 갤럭시S23에 사용되는 퀄컴의 최신 칩인 스냅드래곤8 2세대가 애플의 A16보다 비싸다고 분석했다. 기즈모도는 퀄컴이 삼성에 공급하는 스냅드래곤 8 2세대의 가격이 160달러인 반면 애플이 A16 가격은 110달러라고 전했다. 그나마도 A16 가격은 한 해 전 선보인 A15에 비해 두배나 상승한 것이다.

퀄컴 스냅드래곤8 2세대

애플 A16과 퀄컴의 칩은 모두 TSMC 4나노 공정에서 제조되지만 삼성이 훨씬 비싼 값에 칩을 확보하는 셈이다. 심지어 퀄컴은 새로 선보일 스냅드래곤8 3세대 칩 공급가를 더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칩 가격 상승은 완제품 가격 상승요인이다. 제조사나 소비자 모두 가격 상승이 반가울리 없다.

삼성은 자체 개발한 엑시노스 대신 퀄컴에 의존하면서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는 자체 개발 반도체가 필수다. 퀄컴의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삼성은 메모리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삼성과 한국 스마트폰의 발전보다는 스스로의 이익 확대일 것이다.

한 가지 더. 애플은 아이폰값은 올리지 않았지만, 서비스 이용료는 꾸준히 높이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크게 상승한 애플 뮤직은 지난해 9.9달러에서 10.9달러로, 애플 TV 플러스도 4.99달러에서 6.99달러로 비싸졌다. 애플은 물가 상승으로 라이선스 비용이 늘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애플의 매출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상승 중이다. 애플은 제품값은 소비자에게 양보하고 서비스를 통해 양보한 것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

오피니언부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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