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사태 첫 민사소송 일단락…CEO 징계 여부도 촉각

대신증권, 1심보다 유리한 판결 받아…다른 민사 등에도 영향 전망
라임사태 연루 금융사 CEO 대상 금융당국의 제재 결정 남아

1조6000억원 규모의 피해를 유발한 라임자산운용 사태와 관련해 투자자와 증권사 간 벌어진 첫 민사 소송전이 일단락됐다. 증권사가 투자원금의 약 80%를 투자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다. 당초 100% 배상을 기대했던 투자자도, 운용사의 부실로 벌어진 사태에 대한 책임을 대부분 떠안게 된 증권사도 모두 웃지 못했다. 추가 민사소송과 금융당국의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여진은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박정림 KB증권 사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 등 라임사태 연루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여부도 관심거리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4-3부(재판장 채동수, 유헌종, 정윤형)는 지난달 21일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방송인 김한석씨 등 4명이 판매사인 대신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투자금 반환 소송 2심에서 투자금의 약 80%를 돌려받도록 하는 내용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4월28일 1심 판결에서는 투자자 4명의 투자금 약 25억원 전액(100%) 반환하라는 판결이 나왔었는데, 이번 2심에서는 그 비율이 줄어든 것이다.

양측의 주장과 제출 증거자료 등은 1심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에게 투자를 권유한 장모 대신증권 지점장이 마치 '원금 보장'이 되는 상품인 것처럼 안내한 기망행위를 모두 인정했다. 판결문에 명시된 증거자료에 따르면 장모 지점장은 투자자들에게 손실 위험이 있는 펀드를 '수익률 연 8% 확정금리형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해당 지점장은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최근 복역을 마쳤다.

2심 재판부는 손실 위험 가능성에 대해 투자자들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그에 대한 주된 근거로 투자계약 당시 작성한 투자설명서에 적힌 '부동문자'를 들었다. 금융 관련 소송에서 흔히 투자자에 불리하게 적용되는 대목이다. 아울러 이미 해당 펀드 외에 투자 경험이 있는 투자자들이 위험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즉 재판부는 펀드 손실에 대해 투자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들은 여전히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배상 비율 하향의 근거가 된 투자 서류는 실제 자금이 오간 시점보다 길게는 한 달가량 늦게 작성된 '사후 계약'이었던 탓에 펀드의 위험성을 투자자들이 사전에 알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펀드에 대한 거짓된 설명으로 투자를 권유한 장모 지점장의 혐의도 인정돼 실형을 받은 상황에서 뒤늦게 해당 서류의 부동문자로 배상 비율이 낮아졌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항변이다. 투자자 측 대리인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는 "(해당 투자 계약서의) 사후 작성을 충실히 변론했음에도 서류에 적힌 작은 부동문자로 위험성을 고지했다는 것은 엉터리 판결"이라며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신증권 사옥 전경

대신증권을 비롯한 증권가에서는 결과적으로 투자 손실액을 대부분 배상하게 됐지만, 적어도 '100%'는 피했다는 점에서 안도하는 분위기다.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투자상품에 대해 판매사가 100% 배상하라는 판례가 남는 것 자체가 업계에는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대신증권 측은 상고 여부에 대해서는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의 결과가 중요했던 이유는 라임사태와 관련해 증권사와 투자자 간의 첫 민사소송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사태가 터진 지는 만 4년이 지났다. 갑작스러운 환매 중단 후 피해 투자자들 일부는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조정을 받아들이기도 했고, 분조위에서 제시한 배상 비율에 만족하지 못해 별도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거나 준비 중인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만약 이번 선행소송에서 투자자들에게 100% 배상하라는 판결이 유지됐을 경우 후속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소송을 거쳐 나온 배상 비율이 결과적으로 금융당국·증권사 측에서 제시했던 비율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고민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라임펀드 판매액이 3000억원대에 달했던 신한금융투자의 경우 지난 8월 말 피해자들에 대해 '사적 화해'를 통해 자발적으로 배상하겠다고 밝혔다. 배상 비율은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지나, 분조위 및 대신증권 사례(80%)를 감안하면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증권가 입장에선 이게 끝이 아니다. 라임사태 연루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여부가 남았다. 박정림 KB증권 사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 등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당초 지난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봤으나, 추석 연휴 및 이달 국회 국정감사 일정 등을 고려해 내달 이후에나 제재안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당국에서 해당 CEO들에 대해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내릴 경우 연임 및 금융권 취업(3~5년)이 제한된다.

증권자본시장부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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