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이재명 대표의 결자해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오늘 구속 기로
구속 여부와 관계없이 민주당 내홍 격화
계파 갈등 끝낼 사람은 이 대표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의 국회 표결 전날인 지난 20일. 잠시 이 대표에게 빙의하는 상상을 했다. 이 대표가 돌연 입장문을 내고 자신에 대한 '체포안 부결'을 사실상 공개 요청한 직후다. 이 대표는 21일째 단식을 이어갔는데, 당내에선 '부결 당론'과 '가결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맞서던 상황이었다. 단식 19일째 병원으로 이송된 이 대표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침묵을 지켜도 될 일이었다. 국회에서 체포안이 가결될 경우 법원 영장실질심사 거쳐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도 휠체어나 병상 출석을 통해 검찰에 핍박받는 야당 대표 모습을 남길수 있고, 구속적부심 신청과 보석 청구 등으로 수감 생활을 피할수 있다는 것이 기자의 얄팍한 상상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자신이 석달 전 했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뒤집으며 부결 지침을 내렸다. 지난 달 3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며 돌입한 무기한 단식은 구속을 피하기 위한 '방탄 단식'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증한 것이다. 일각에선 "단식을 오래해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 만큼 이 대표의 부결 요구는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 대표 체포안은 가결 정족수(148표)를 1표 넘어서 국회를 통과했는데, 지난 2월 1차 표결 당시 기권(9표)과 무효(11표)를 선택한 의원 중 10명이 찬성표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1차 투표에서 차마 가결표를 선택하지 못한 민주당 의원들이 '생즉사(生卽死)'로 입장을 바꾼 이 대표에게 실망한 결과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전후를 복기하면, 민주당 일각에선 일찌감치 체포안의 가결 분위기가 감지됐다. 박광온 전 원내대표는 체포안 표결이 이뤄지던 지난 21일 이 대표와 면담 뒤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통합적 당 운영을 위한 기구 설치'와 '가장 중요한 총선 기준은 경쟁력'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이 대표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 전 원내대표가 그동안 이 대표의 퇴진을 요구해온 비명계의 부결 조건이 담긴 모종의 중재안을 이 대표에게 제시했는데, '공정한 공천 관리'라는 답변으로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친명계는 비명계가 내년 총선 공천권을 가져가기 위해 이 대표에 대한 체포안을 가결시켰다며 이 대표의 '옥중 공천'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또 체포안 가결파를 색출해 징계하는 작업에 나섰다. 민주당은 이번 체포안에 대한 가부 당론을 정하지 않았다. 헌법 기관인 개별 국회의원의 소신 투표를 존중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도 친명계 지도부는 가결표는 "해당 행위"라며 비명계를 솎아내는 중이다.

그동안 이 대표에게 비판적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은 기표소 안에서 촬영한 투표용지를 공개하거나 “부결표를 던졌다”고 고백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체포안이 가결된 다음날 입장문을 통해 "윤석열 정권의 폭정에 맞서 싸울 정치집단은 민주당"이라고 했지만, 정작 싸움은 민주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26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는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민주당 내전은 격화할 것이다. 민주당 내홍을 끝낼 사람은 이재명 대표 하나뿐이다.

정치부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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