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채석기자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첫 고객을 확보하면서 회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비즈니스 성장 동력이 크게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객은 인공지능(AI) 반도체 팹리스(설계) 기업 '그로크(Groq)'. 삼성은 4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SF4X)으로 반도체를 만들어 그로크에 납품한다.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데 필수인 수율(양품 비율) 제고, 고객사 확보 등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그로크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삼성 테일러 공장에서 SF4X 차세대 반도체를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삼성 테일러 공장 반도체 양산 소식을 공식적으로 전한 팹리스는 그로크가 처음이다. 계약 대상이 미국 팹리스고 AI 반도체 기업이라는 점에서 삼성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는 그로크 수주 발표를 삼성전자가 5나노 이하 반도체 미세공정 고도화, 안정화를 통해 1등 기업 TSMC 추격 발판을 마련했다는 증거로 해석한다. 마코 치사리 삼성전자 반도체혁신센터장 부사장은 "삼성 파운드리는 반도체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획기적인 AI, HPC(고성능컴퓨팅), 데이터 센터 솔루션을 시장에 출시할 것"이라며 "그로크와의 협업은 삼성 파운드리가 새로운 AI 혁신에 공헌하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파운드리 업체 성과를 평가할 때 미세 공정(기술) 발표, 수율 추정치, 고객 수주 소식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수율 추정치만으로는 부족하고 고객 관련 뉴스가 전해져야 한다. 수율은 회사 기밀이기 때문에 증권가 추정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4나노 수율이 20%대라는 미확인 루머가 돌았지만 최근 75%까지 높였다는 증권가 분석 보고서가 나왔다.
5나노 이하 반도체 고객 주문도 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에서 모빌아이(인텔 자율주행 기술 전문 자회사), 암바렐라 칩 물량을 수주했다. AI 반도체에서는 그로크를 확보했다. 그로크는 스타트업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퀄컴, 지멘스, 테슬라 같은 대형 팹리스 수주 전략을 펴다 스타트업 고객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바꿨다. 회사 규모와 관계없이 우수 팹리스 고객과 협업한다는 전략이다.
파운드리 사업에 삼성그룹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용 회장이 2019년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 133조원 투자 발표를 한 뒤 삼성전자는 매년 역대 최대 연구개발(R&D)비 투자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올 상반기 DS(반도체)부문이 8조9400억원 적자를 냈지만 R&D에 23조2000억원을 썼다. 삼성전자 전체 R&D 투자비 25조3000억원의 92%를 반도체에 쏟아부었다. 추가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지분을 팔아 3조원가량을 현금화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 조사 결과 파운드리 시장은 올해 1202억달러(약 161조원)에서 2026년 1879억달러(약 252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분야는 미국의 중국 화웨이 규제 후 '경제안보' 핵심 분야로 떠오르며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파운드리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파운드리사업부를 운영 중이다. 10년도 되지 않아 2위까지 올라갔지만 1위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1분기 기준 삼성전자 점유율은 12.4%다. 1위 TSMC 60.1%보다 47.7%포인트(p) 뒤져 있다. 작년 1분기(37.3%p)보다 격차가 10%p 이상 벌어졌다. TSMC도 버거운데 세계 최대 CPU(중앙처리장치) 업체 인텔까지 상대해야 한다. 인텔은 지난 6월 말 파운드리 사업부(IFS)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TSMC-인텔 '빅3' 업체 미세 공정 기술 경쟁은 치열하다. 빅3 계획대로라면 2025년에 세 회사 모두 2나노 반도체 양산 체계를 갖춘다. 삼성전자 고유 기술인 GAA(게이트 올 어라운드) 공정도 2025년이면 TSMC 손에 들어간다. 삼성전자는 TSMC보다 3나노 양산 발표를 반년가량 빨리했는데도 점유율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기술 우위가 수율 향상, 수주 증대, 팹리스 협력체계 구축 등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다. 삼성전자는 반기보고서에 "4나노 2세대 제품은 안정적인 수율을 기반으로 양산 중이며 3세대 제품 4분기 양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