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고사성어 가운데 계구우후(鷄口牛後)라는 말이 있다. 사기(史記)의 소진전(蘇秦傳)에 나오는 말이다. 계구우후의 뜻은 큰 집단의 꼴찌보다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더 낫다는 것을 닭의 머리와 소의 꼬리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큰 집단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역할을 하기보다는 작은 집단의 수장이 되라는 의미. 계구우후의 교훈은 정치에도 통용된다. 이른바 정치의 하방(下放)이 바로 그것이다. 여의도라는 정치 중심 무대를 벗어나 지역으로, 지방으로 내려가는 정치인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할까.
여의도 정치인들이 의원 배지를 던지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다만 더 큰 정치의 뜻이 있어서 전략적 선택으로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은 계구우후 교훈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자리에서 물러나 서울시장, 부산시장, 대구시장 등 광역단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다. 서울시장이 국회의원 자리보다 정치적 의미와 위상에서 더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이 서울의 구청장이나 지방 어느 시장이 되는 선택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정치의 기본 문법을 고려한다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해당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의 공천 권한은 절대적이다. 이론적으로는 당원들의 뜻에 따라 공직 후보자가 결정되지만, 현실은 국회의원이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서울의 구청장 후보도 경기도의 시장 후보도 결정된다는 얘기다.
자기가 찍은 후보가 구청장이나 시장 후보가 되는 현실에서 국회의원들이 하방(下放)을 선택할 수 있을까.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지만, 정치의 상황 변화와 맞물려 그런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보다는 구청장이나 시장의 자리를 품으려는 이들.
가장 최근의 사례를 꼽자면 국민의힘 쪽에서는 서울 서대문구청장에 당선된 이성헌 구청장을 들 수 있다. 정치인 이성헌은 서울 서대문구의 정치 흐름을 주도했던 쌍두마차 가운데 한 명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최근 20년간 서대문 지역구 국회의원 자리를 놓고 격돌했다.
정치인 이성헌은 그 대결 과정에서 재선의 국회의원을 경험했다. 서대문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지대한 인물. 그런 인물이 의원 배지를 던지고 서대문구청장을 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성헌 구청장은 취임사를 통해 “지역 정치인으로 임해온 26년, ‘서대문 지역 발전’을 향한 구민 여러분의 간절한 바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법을 만드는 역할이라면 구청장은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토대로 실질적인 정치를 실행하는 역할이다. 민생과 밀접한 정책과 제도를 집행하는 주체(수장)가 바로 구청장인 셈이다.
국회의원이 통과시킨 새해 예산을 근거로 집행하는 역할, 여의도 정치와는 다른 지자체장의 권한이자 매력이다. 이성헌 구청장은 초선 구청장으로서의 임기를 이어가고 있는데, 앞서 그런 경험을 한, 그것도 삼선 구청장을 역임한 인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노현송 전 강서구청장이다. 노현송 전 강서구청장은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을 국회의원이 됐다. 2008년에도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이후 정치인 노현송은 국회의원이 아닌 강서구청장 자리에 도전장을 냈다. 2008년, 2012년, 2016년에 이르기까지 50%가 넘는 득표율로 세 번 연속 당선됐다.
선거 공학의 측면에서 국회의원 선거와 지자체장 선거가 다른 것은 상대적으로 현역 지자체장들이 다시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지자체장들 역시 선거 때마다 경쟁을 피할 수는 없지만, 현역 프리미엄을 토대로 롱런하는 경우가 많다.
후보 개인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거나 의원 배지 도전 등 별도의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초선에서 재선, 삼선 지자체장 자리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지자체장들 역시 여의도의 정치 풍향계에 민감하지만, 현역 국회의원보다는 부담이 덜하다.
정글에 비유되는 여의도 정치를 벗어나 시민과 밀착해서 행정을 집행하는 역할, 의원 배지를 던진 정치인들이 지자체장으로 정치의 항로를 변경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