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영기자
주요국 중앙은행의 고강도 긴축으로 각국 정부가 부담해야 할 국채 이자가 연간 2조3000억 달러(약 295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기업 뿐 아니라 과거 저리에 막대한 국채를 찍어내 자금을 조달해 온 각국 정부까지 이자 상환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신흥국 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 정부 등 선진국의 상황도 녹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5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기관 피치에 따르면 자체 신용등급을 부여한 국가의 국채 이자 비용은 2020년 1조5200억 달러에서 올해 2조3000억 달러로 51.3% 급증할 것으로 관측됐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각국이 확장적 재정 기조 아래 나랏빚을 늘린 데다, 지난해초 본격화된 금리인상까치 겹치며 이자 부담이 커졌다.
이자 비용의 절반 이상은 선진국에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선진국의 국채 이자 상환액은 2020년 8700억 달러에서 2023년 1조2800억 달러로 47.1% 불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신흥국도 같은 기간 6500억 달러에서 9100억 달러로 이자 부담이 급증하겠으나, 증가 폭은 40%로 선진국 대비 작을 것으로 예상됐다. 피치는 "선진국은 낮은 차입비용으로 더 많은 혜택을 누려왔다"며 "선진국의 이자비용이 신흥국보다 더 가파르게 늘어난 이유"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영국의 국채 금리만 봐도 10년물 기준으로 팬데믹 기간 1% 아래였지만, 지금은 각각 3.9%, 4.3%까지 뛰었다.
세계 최대 국채 발행국인 미국은 나랏빚 이자로만 한달에 51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부담하고 있다. 미국은 6월 기준 직전 12개월 간 국채 이자 지급액이 6160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5000억 달러를 첫 돌파한 이후 7개월 만에 다시 6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영국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 5월 기준 직전 12개월간 영국의 국채 이자 지급액은 1170억 파운드로 2021년 9월의 두 배에 달했다. 금리인상에 이어 인플레이션까지 영국 정부의 재정을 짓누르고 있다. 영국은 일반 채권과 달리 원금과 이자가 물가 상승분 만큼 늘어나는 물가연동국채 비중이 전체 나랏빚의 25%에 달한다.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회원국 2위인 이탈리아(12%)의 두 배에 달한다. 소득과 소비지출 증가세 둔화에도 에너지발(發) 인플레이션이 닥치면서,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무거운 이자 상환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정부의 미상환 물가연동국채 발행 규모는 2022년 말 기준 3조5000억 달러다. 전체 국채 발행량의 11%를 차지한다. 신흥국 중에선 우루과이, 칠레, 브라질 등 물가연동국채 발행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피치는 분석했다.
선진국의 이자 상환 부담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피치는 향후 국가신용등급 평가에서 선진국의 등급 전망 하향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피치에 따르면 신흥국은 긍정적 전망이 부정적 전망보다 3배 많은 반면 선진국은 부정적 전망이 긍정적 전망보다 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치는 "선진국이 상대적으로 더 큰 금리 스트레스에 직면한 만큼 국가 신용등급 전망은 현재 선진국보다 신흥국에 우호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