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법조전문기자
어머니 장례식날 술에 취해 아버지를 폭행해 살해한 50대 남성에게 징역 27년이 확정됐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존속살해 및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55)의 상고심에서 김씨에게 징역 27년을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연령·성행·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이 사건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기록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살펴보면,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사정을 참작하더라도 원심이 피고인에 대해 징역 27년을 선고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2022년 6월 89세의 아버지를 폭행해 살해하고, 12세의 의붓아들을 수차례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5년 필리핀에서 필리핀 국적의 여성과 혼인해 살다가 2011년 11월 한국에 귀국한 김씨는 이후 일정한 직업 없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돼 생계급여 등 지원금을 받아 생활했지만, 아내와 4명의 자녀들을 양육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김씨의 아버지는 2012년 김씨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대구 소재 부동산을 팔았는데, 이후 해당 부동산의 주변 시세가 오르면서 김씨는 아버지를 원망하게 됐다. 또 김씨는 술을 마시면 자신의 아내나 아들, 누나 등 가족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사건 당일인 2022년 6월 24일은 김씨 어머니의 장례식 날이었다. 이미 장례식을 치르며 술을 마신 김씨는 어머니의 화장을 마치고 부산 기장군의 아버지 집에 가서도 막걸리 한 병을 마셨고, 편의점에서 술을 더 사서 마신 상태였다.
술에 취한 김씨는 어머니 장례식 부의금이 많지 않은 사실과 과거 아버지가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대구의 부동산을 매도한 사실을 원망하던 중 화가 나 아버지의 뺨을 2차례 때렸다.
자정을 넘긴 시간 아버지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김씨를 피해 집 밖으로 도망갔지만, 김씨는 자신의 아들에게 아버지를 데리고 들어오도록 한 뒤 잠시 집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와 술을 마시며 다시 아버지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손과 발, 아버지의 나무 지팡이 등으로 아버지의 머리와 얼굴을 비롯한 전신을 약 2시간 동안 폭행했다. 아버지가 도망을 가면 쫓아가서 폭행했고, 자신의 아내 뒤에 숨으면 끌어내 침대나 잠자리 쪽에 눕혀놓고 다시 폭행했다.
김씨는 아버지를 무차별 폭행한 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새벽 3시21분경 아버지의 집을 빠져 나오면서 자신의 아내와 큰아들에게 따라 나오라고 해 심한 상처를 입은 아버지를 혼자 남겨두게 했다.
결국 김씨의 아버지는 다발성 갈비뼈골절, 혈액가슴증, 뇌거미막밑출혈, 간의 찢김, 팔뼈 및 손뼈의 골절 등으로 사망했다.
김씨는 또 자신의 의붓아들(당시 12세)의 머리를 손이나 스펀지 야구 배트로 때리고, 모자를 벗겨 모자챙으로 머리와 귀를 때려 귀에 상처가 나게 하는 등 수차례 폭행해 학대한 혐의도 받았다.
1심 법원은 김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아동 관련 기관 3년간 취업 제한, 10년간 전자장치 부착도 명령했다.
재판에서 김씨 측은 아버지를 폭행한 건 맞지만 살해할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씨가 휘두른 폭행의 정도나 범행 후 정황 등을 토대로 김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김씨의 아내는 법정에서 김씨가 아버지를 폭행하는 장면을 보고 '저렇게 사람을 때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또 김씨 측은 당시 술에 취해 심신장애 상태였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술에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붓아들에 대한 폭행에 대해 김씨 측은 "훈육하는 과정에서 다소의 물리력을 행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물리력만을 행사했을 뿐 피해자에 대한 보호자로서 훈육을 위한 다른 방법을 고려했다고 볼 만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씨가 계획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보이는 점과 징역형의 집행유예 이상의 형으로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고, 가장 최근의 전과도 약 20년 전의 것인 점들을 양형에 있어 유리한 사정으로 반영했다.
2심 법원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검찰 측 항소는 기각한 반면, "형량이 너무 무겁다"는 김씨 측 항소를 받아들여 김씨의 형량을 징역 27년으로 감형했다.
김씨의 누나가 2심에서 김씨의 선처를 탄원한 점, 김씨의 아내와 의붓아들 역시 김씨의 선처를 탄원한 점과 1심에서 범행의 고의를 부인했던 김씨가 2심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점 등이 고려됐다.
김씨는 다시 양형부당 등을 이유로 상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