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희기자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이 개원 82년 만에 폐원 수순을 밟는다. 경영난에 시달려온 서울백병원은 2016년부터 티에프(TF)팀을 만들어 경영정상화를 시도했으나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백병원 교수들과 직원들은 경제적 이유만으로 폐원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20일 이사회를 열어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다. 올해까지 서울백병원 누적 적자는 174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경영정상화TF팀은 최근 의료 관련 사업 추진이 어려워 폐업 후 병원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거나 매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결론내렸다.
폐원하더라도 393명의 직원들은 법인 내 다른 병원으로 고용을 승계한다는 방침이다. 인제학원은 서울백병원 외에도 상계·일산·부산·해운대에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병원 건물과 부지 활용 방안 등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지만, 부동산업계에선 상업용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지난해 6월 교육부가 사립대 법인이 보유한 토지나 건물 등의 재산을 수익용으로 바꿀 때의 허가 기준을 완화하는 '사립대학 기본재산 관리 안내' 지침을 개정함에 따라, 서울백병원 부지를 상업용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서울백병원은 대표적인 번화가인 명동과 가깝고, 부지 가치는 2000억~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서울백병원 직원들과 의료계는 병원 측이 일방적으로 폐원 통보를 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백병원 노조가 속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노조)는 19일 서울백병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폐원 안건 상정 철회를 촉구했다.
노조는 "서울백병원을 졸속적으로 폐원하는 것은 그동안 경영정상화를 위해 병상 축소, 인원 감축, 구조조정 등을 묵묵히 견디며 헌신·희생해온 393명 직원을 토사구팽하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이어 "소아청소년과 진료, 중증환자 진료, 지역 응급의료기관 등 서울 도심의 필수의료기능을 담당하는 서울백병원의 갑작스런 폐원은 서울 도심의 의료공백을 일으키게 된다"며 "서울 도심의 유일한 감염병 전문병원이자 대규모 응급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백병원의 폐원은 필수의료 공백과 공공의료 기능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 수익논리만을 내세우기 이전에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할 자치구인 서울 중구도 의료 공백을 우려해 폐원을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백병원은 중구의 유일한 대학병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최전선에서 감염병 전담기관으로 활약했다. 서울백병원이 폐원하면 중구 내 종합의료기관은 국립중앙의료원만 남게 된다.
한편 서울시내 종합병원은 지난 20여년간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앞서 중앙대 필동병원(2004년), 이대 동대문병원(2008년), 중앙대 용산병원(2011년), 성바오로병원(2019년), 제일병원(2021년) 등이 폐원하거나 이전했다.
노조는 "서울 도심 종합병원의 폐원은 상주 인구 감소, 적자 발생, 대학병원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단지 적자라는 이유로 폐원이 졸속으로 추진되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