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법조전문기자
허경준기자
지난 8일 서울고법 형사1-3부는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소유했던 오산시 임야 공매대금 75억여원에 대한 검찰의 추징금 집행에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해당 임야를 신탁받은 교보자산신탁이 2016년 낸 집행에 관한 이의신청이 7년 만에 기각된 것이다.
교보자산신탁은 집행에 관한 이의신청 말고도 2017년 검찰을 상대로 ‘압류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냈고, 2019년엔 오산 임야 3필지의 공매대금 55억원의 서울중앙지검에 대한 배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다.
전자에 대해서는 지난해 7월 대법원이 해당 임야가 전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며, 신탁사가 이런 정황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검찰의 압류처분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지난해 4월 1심에서 검찰에 유리한 판결이 나왔지만 교보 측의 항소로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공매대금 배분 취소소송은 교보 측이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낸 소송이다. 검찰은 피고 공사 측 보조참가인으로 재판에 참여했는데,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검사 임세진) 소속 검사가 직접 소송을 수행해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12일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몰수·추징보전 건수는 각 2400~2800여건으로 평균 2500여건 정도였던 반면, 추징보전금액은 1조1357억원(2019년)부터 5조9543억원(2021년)까지 년도별 편차가 크게 나타났다.
한편 같은 기간 판결 확정 후 실제 추징 집행에 성공한 추징금은 2018년 1103억원(6252건), 2019년 1824억원(5868건), 2020년 1244억원(5662건), 2021년 1221억원(5877건), 2022년 1009억원(5889건)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직전 년도까지 집행하지 못한 추징금을 포함한 전체 추징 대상 금액 대비 집행률은 2018년 0.41%, 2019년 0.66%, 2020년 0.41%, 2021년 0.39%, 2022년 0.32%에 그쳤다.
매년 건수를 기준으로 한 집행률은 15~17%대로 집계됐는데, 이처럼 금액 대비 집행률이 현저히 낮은 건 사실상 집행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징벌적 추징(범죄수익과 관련 없이 선고되는 추징) 사례에서 환수하지 못한 거액의 추징금 미납액이 누적 미집행 추징액에 합산되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범죄수익환수과 관계자는 "추징에는 일반적인 이익박탈형 추징과 징벌적 추징 두 가지가 있다"며 "징벌적 추징에 해당하는 대우분식회계 사건의 미집행 추징금이 20조원이 넘고, 부산금괴밀수 사건이 2조1000억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실제 2018년 26조9300여만원이었던 추징 대상 금액은 지난해 31조3800여만원까지 늘어났다.
사실상 집행 가능성이 거의 없는 거액의 미집행 추징금 사례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집행률은 높아지겠지만, 이를 감안해도 검찰의 추징 집행률이 상당히 저조한 게 사실이다.
이밖에도 검찰이 추징 집행에 성공해도 관계 법령상 국세나 조세 채권을 최우선적으로 공제한 뒤 나머지 금액만 실제 추징할 수 있다는 점도 추징율을 높이기 어려운 현실적 이유 중 하나다.
범죄수익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우선 형사재판에서 추징금이 따로 선고돼 최종 확정돼야 한다. 이는 미국처럼 최종 유죄 판결 없이도 몰수가 가능한 독립몰수제를 도입하지 않은 현행 법체계상 몰수는 형벌의 일종인 부가형이고, 추징은 어디까지나 몰수를 전제로 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대검 관계자는 "현행법상 재산에 관한 범죄에 대해서는 추징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상당히 제한돼 있다"라며 "예외적으로 횡령, 배임과 범죄단체·유사수신·다단계·보이스피싱 등 특정한 방법에 의한 사기에 한해 예외적으로 몰수·추징이 가능하지만, 이마저 '범죄피해자의 피해회복이 심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제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제8조 1항에서 ▲범죄수익(1호) ▲범죄수익에서 유래한 재산(2호) ▲범죄수익의 은닉·가장·수수 등 범죄행위에 관계된 범죄수익(3호) ▲3호의 범죄행위에 의해 생긴 재산 또는 그 범죄행위의 보수로 얻은 재산(4호) ▲3호 또는 4호에 따른 재산의 과실 또는 대가로 얻은 재산 등을 몰수할 수 있는 범죄수익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조 3항에서 '1항에도 불구하고 같은 항 각 호의 재산이 범죄피해재산인 경우에는 몰수할 수 없다'고 규정, 원칙적으로 피해자가 있는 재산범죄의 경우 몰수나 추징이 불가능함을 천명하고 있다.
다만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제6조(범죄피해재산의 특례) 1항은 '범죄수익이나 범죄수익에서 유래한 부패재산이 범죄피해재산으로서 범죄피해자가 그 재산에 관하여 범인에 대한 재산반환청구권 또는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없는 등 피해회복이 심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몰수·추징할 수 있다'고 특례를 두고 있다. 그리고 같은 조 2항은 '이 법에 따라 몰수·추징된 범죄피해재산은 피해자에게 환부(還付)한다'고 정하고 있다.
추징을 명하는 유죄판결이 확정됐다고 다가 아니다. 추징금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범죄인 명의의 재산이나 등기부 등 공부상 소유자는 제3자로 돼 있어도 실질적인 소유자가 범죄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차명재산이 존재해야 한다.
일선 검찰청에서 범죄수익 환수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검사는 "범죄를 통해 벌어들인 범죄수익을 본인 명의의 재산으로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문에 추징금 집행을 위해서는 범죄인이 제3자 명의로 숨겨놓은 재산을 일일이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인이 작정하고 숨겨놓은 차명재산을 찾아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차명재산을 찾았다고 집행이 바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범죄인 명의의 재산에 대해서는 추징금 선고가 확정된 형사판결문이 민사집행법상 집행권원으로 인정돼 곧바로 집행이 가능한 반면, 차명재산 혹은 제3자 명의의 재산에 대해서는 형사판결문을 가지고 바로 추징금 집행을 할 수 없다는 게 우리 대법원의 입장이다.
따라서 검사가 찾아낸 차명재산 내지 제3자 명의의 재산에 일단 처분을 금지하는 가압류 등 몰수·추징보전 절차를 거친 뒤 채권자대위소송 또는 사해행위취소소송 등을 제기해 승소함으로써 먼저 그 명의를 범죄인 명의로 돌려놓아야 한다.
대검 관계자는 "추징 선고를 받은 범죄인이 거짓말을 하고, 차명으로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 거다’라고 하면 지난한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라며 "전 전 대통령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상대방이 추징을 하는 국가(검사)를 상대로 재판상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일이 이에 응소해 승소하지 않으면 더 이상 추징금 집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수 년이 걸리는 민사소송의 산을 넘고 또 넘고 그렇게 가야 범죄수익 환수라는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