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물가 둔화에 신용경색까지…ECB도 '베이비스텝' 밟나

유로존 근원물가 10개월 만에 둔화
은행들도 대출 축소 나서
4일 통화정책회의 촉각

연일 역대 최고치를 찍었던 유로존의 근원 물가 상승률이 10개월 만에 둔화됐다. 오는 4일로 예정된 통화정책회의에서 미국과는 달리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이 유력했던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데 그칠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유럽연합(EU) 통계 기구인 유로스타트는 4월 유로존의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7.0% 올랐다고 2일(현지시간) 밝혔다. 3월(6.9%) 보다 상승폭이 커지면서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유지된 둔화세가 꺾였다. 전문가 예상치(6.9%) 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물가의 장기적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 상승률은 하락했다. 4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5.6%로 역대 최고치를 찍은 전월(5.7%) 보다 0.1%포인트 내렸다. 유로존 근원물가가 하락한 것은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근원물가는 에너지·식료품 등 변동성이 큰 항목을 제외해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란 점에서, 이번 10개월 만의 상승폭 둔화는 유로존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번 지표는 4일 ECB 통화정책 회의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그동안 시장에선 ECB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지만 물가 상승세가 진정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향후 인상폭을 두고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지난 3월 파산으로 시작된 은행권 위기도 ECB의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전망에 점차 무게를 싣고 있다.

이날 발표된 ECB의 올해 1분기 은행 대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대출을 억제하는 은행 비율은 27.0%로 1년 전(6.0%) 보다 대폭 확대됐다. 차입 비용 급증과 SVB 사태로 인한 은행권 혼란으로 대출을 더 옥죈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들의 대출 수요 순감소 규모도 은행 예상을 밑돈 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블룸버그는 은행권의 대출 축소 흐름에 이어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폭 둔화까지 확인되면서 ECB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이미 러시 블룸버그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4월 인플레이션 통계의 주요 시사점은 실질적인 상승 반전이 없다는 점"이라며 "견조하지만 뛰어나진 않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신용경색과 근원물가의 완만한 하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ECB가 금리를 대폭 올리기 보다는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데이비드 파월 블룸버그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ECB 은행 대출 조사 결과는 신용 공급과 수요 모두 말라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긴축 속도를 0.5%포인트에서 0.25%포인트로 늦추고자 하는 ECB 위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1팀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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