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한기자
해외 입양인들과 가족, 친구 등 100여 명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 있는 민속극장 ‘풍류’에 모였다. 미국과 캐나다, 벨기에, 스웨덴 등 15개국에서 온 이들은 한국 만신(무당)들의 굿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마루 아트센터에서 5월 2일까지 열리는 해외 입양 예술가들의 전시회 ‘마더랜드(Motherland)'에 참가한 예술가들이다.
공연은 사진가 박찬호가 주변 예술인들의 도움을 받아 설립한 해외 입양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모임 KADU(Korean Adoptees Diaspora Art & Culture)가 주최한 입양인 대동 예술제 행사 중 하나다. 국가무형문화재인 서해안 배연신굿 전승 교육사 김혜경 만신과 전남 무형문화재 김정희 만신, 이일구 만신, 이미영 만신 등의 굿이 이어졌다. 만신들은 박 사진가의 사진에도 등장하고 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이로, 그의 부탁을 받고 흔쾌히 공연을 수락하고 후원금도 냈다.
삶과 죽음의 한과 위로가 섞인 김정희 만신의 절절한 씻김굿 가락에 일부 관객은 눈물을 보였다. 높은 곳에 설치된 작두날에 맨발로 올라가 입양인들의 행복을 축원해준 김혜경 만신은 “춤 한판 추자”며 한복을 걸쳐주었다. 관객들은 무대로 뛰어나와 손잡고 뛰어다니며 춤을 추었다. 연주자들의 꽹과리와 북, 장고, 피리 장단에 맞춰 몸을 흔들고 뛰고 손잡고 빙빙 도는 막춤이었다. 기억에서도 까마득했던 모국에서 고향의 온기에 젖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모든 일이 사진가 박찬호의 무당과 굿, 한국의 상례와 사찰 등 전통문화 사진 작업에서 비롯되었다.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교류가 단절되었던 시절, 미국에서 사진집을 출판한 사진가가 온라인에서 열린 독자와의 대화를 열었다.
참석자 중 입양인인 제임스 스트라이커 씨는 한국말도 할 줄 몰랐고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는데 이상할 만큼 사진들에서 평온과 감격을 느꼈다 했다. 소문을 듣고 그의 SNS로 모여든 입양인들이 그의 사진들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평화를 느꼈다고 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예술가들이었다. 태어난 땅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이런 것이었음을 깨달은 입양인들이 서로 소식을 전하고 연락하여 사진가의 사진에 담긴 모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렇게 인연이 닿은 사진가와 입양인들은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금껏 보지 못했던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갈증을 조금씩 채웠다. 비슷한 처지의 입양인들이 한국에 한 번 모여서 모국과 입양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고 이야기했고, 사진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벌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진가의 뜻과 만나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올해로 해외 입양 70주년을 맞는다 한다. 전쟁 직후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을 외국으로 보내며 시작한 해외 입양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굿과 사진들이 해외 입양인들을 불러 모았다. 춤을 추던 한 입양인은 "이제서야 내가 한국에 연결된 것 같다"며 감격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