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기자
이시형 박사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정신의학을 국내에 처음 전한 이다. 그가 처음 빅터 프랭클의 이론을 접한 건 6·25 전쟁 당시의 대구. 중앙통 한복판 길 좌판에서 빅터 프랭클의 책 일본어판을 접한 순간 그는 책에 빠져들었다. “사람을 살리는 깜짝 놀랄 아이디어가 그 안에 있더라.” 세계적으로 프로이트 정신의학이 주를 이뤘고, 국내에는 정신의학 자체가 없다시피 했던 당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 스스로 답을 찾는다’는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정신의학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다녀온 그는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를 국내에 소개해 많은 이들의 삶의 의미를 일깨우며 마음을 치료하고 있다.
의미치료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이 박사는 그중에서도 걷기를 강조한다. 리듬감과 강도가 뇌를 자극하기에 적당해 심신 건강에 최고라는 것. 이 박사는 “믿기지 않겠지만 5분만 걸어도 행복해진다. 이건 실증된 과학적 결론”이라며 “아침이면 더욱 좋고, 점심시간도 괜찮다. 딱 5분만 걸어라.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푸른 하늘, 눈부신 태양, 나뭇잎의 흔들림, 매미 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걸으면 대뇌 피질 기능이 억제되면서 온갖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잠시 가신다”고 설명한다.
쉬운 방법에 효과를 의심하는 이들에게 그는 “대뇌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없다.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에 온 세포가 상쾌한데 그 순간 다른 생각이 날 리가 없다”며 “‘명상 보행’이란 말을 쓰는 것도 이런 상태가 명상의 경지와 별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찾아온 내담자들에게 ‘소크라테스 워킹’을 권한다. 그냥 걷기보다는 한 가지 주제를 갖고 걷자는 것. 그는 “당면한 문제를 머리에 넣고 걸어보라. 필기도구를 갖고 걸어도 좋다”며 “걷다 보면 문제해결이나 창의적 발상에 좋은 ‘연동’ 작용이 일어난다. 뇌 과학에선 이를 체인 어소시에이션(Chain Association)이라고 한다. 힌트가 연쇄작용을 일으켜 끝내 해결책을 찾아내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고민이 생겼을 때 방안을 서성거리는 것도 이런 연유라고 설명했다.
그가 걷기를 강조하는 건 시대가 정신적으로 궁핍한 쪽으로 흐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질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빈곤해졌다는 것. 이 박사는 “환자 중에 자신을 백만장자라 여기던 이가 있었는데 치료받으면서 나아지니 ‘선생님, 왜 이제는 미치지도 않습니까’라고 하더라. 그때 정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며 “다만 이후 발 길이 끊겼는데, 아마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마음 건강이 정말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는 이 박사가 내담자들에게 ‘세로토닌 워킹’을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워킹법은 간단하다. 평소보다 조금 빠르다 싶게 보폭을 약간 넓게 걷는다. 이때 가슴은 펴고 허리는 반듯하게 한다. 호흡은 아랫배로 세 번 내쉬고 한 번 들이마시고 바람과 낙엽 소리 등에 주의를 집중한다. 집중을 돕기 위해 세로토닌 음악(세로토닌 문화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내려받기 가능)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박사는 “이대로 5분만 걸으면 행복 물질인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15분 후에는 최고조가 된다”고 설명한다.
이 박사가 자주 걷는 코스는 덕수궁 돌담길이다. 인왕산 언저리에서 시작해 독립문과 경희궁 벽으로 이어져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시청 앞에서 끝나는 길. 이 박사는 “내 생각에는 이 길이 과거에 진고개를 지나 남산 샌님골로 이어졌을 것 같다. 과거 밤이면 인왕산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나무꾼도 이 길을 따라 남산 샌님골로 갔을 것”이라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걷노라면 긴 역사의 여정에서 지금의 작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이 길은 이 박사에게 창조의 길이기도 하다. 그는 “이 길을 어슬렁거리노라면 불현듯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플라자 호텔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시청 광장을 지나 청계천을 바라보며 걷다가 교보문고에 들려 넓은 매장을 둘러보면 지적 호기심에 가슴이 뛴다”고 전했다.
이 박사는 건강의 비결로 좋은 습관을 강조한다. 그는 “정신의학에 예방의학이라는 게 있는데 사실 이미 좋은 처방은 다 나와 있다. 근데 가장 안 되는 게 ‘계속’이다. 꾸준히 소식하고 운동하면 나아질 수 있는데 이걸 못 지킨다”며 “대개 우울증 치료하는데 9개월 정도 걸리는데 약보다 운동 습관이 중요하다. 근데 대부분 조금만 나아지면 그만둔다. 한국 사람이 제일 못하는 게 계속(지속)”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루 5분 이상 감각에 집중하며 꾸준히 걷기만 해도 마음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조언한다.
마지막으로 이 박사는 “내가 90살인데 동창들 만나면 다들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고 한다”며 “노년 행복의 중요한 요건 두 가지는 경제력과 건강이다. 경제력은 어떨지 몰라도 건강은 노력하면 된다. 운동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