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화기자
국내 반도체 업계가 최대 소비 시장인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이 빗장을 풀면서 경기 회복과 함께 반도체 수요가 늘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반면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글로벌 경기가 안 좋은 데다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가 날로 심해지는 탓이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코로나19 봉쇄 정책을 끝낸 뒤 최근 경기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이런 상황에서 중국 내 IT 기기 수요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현지에서 IT 기기 생산과 소비가 많아질수록 탑재되는 반도체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업계는 특히 모바일 수요에 주목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중국 리오프닝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을 늘릴 주요 요인이라고 봤다. 모바일용 제품 비중이 높은 반도체 업계로선 그만큼 기회가 되는 셈이다. 전체 D램에서 모바일용 제품 비중은 지난해 기준 38.5%로 가장 높았다.
박명수 SK하이닉스 D램마케팅 담당(부사장)은 지난달 콘퍼런스콜에서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 리오프닝 이후 경기 부양책, 예를 들어 스마트폰 보조금 등의 변화가 있다면 하반기 출시되는 신제품 위주로 고용량 모바일 (반도체) 수요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반도체 수출도 영향권에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대 중국 수출이 리오프닝 영향으로 하반기 이후 점차 회복될 것"이라며 "휴대폰, 반도체 등 IT 수출이 시차를 두고 회복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국내 수출의 40%가량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반면 리오프닝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중국 리오프닝이 효과를 내려면 경제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5% 안팎으로 내다보고 있다. 1994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처음 발표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중국은 지난해 5.5% 경제성장률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3.0%에 그치기도 했다. 46년 만에 두 번째로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글로벌 시장 상황은 더 좋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2.9%로 제시했다. 투자은행(IB)들과 각국 경제 기관 전망치도 1~2%대를 머물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 업체들이 우리나라 반도체를 탑재한 전자 제품을 현지에서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도 판다"며 "중국만 리오프닝 한다고 될 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경색된 소비 심리가 풀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대중국 제재 강도를 높이는 점도 부정적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평소라면 (리오프닝) 영향이 클 수 있지만 지금은 미국 제재 등 사안이 복잡해서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며 "한국 업체뿐 아니라 미국 업체들도 중국에서 소극적인 상황이라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장비 수출을 막고 있다. 미 정부는 반도체 장비 제재 항목을 17종에서 두 배 이상 늘리는 새로운 규제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메모리 상당량을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선 부담을 키우는 요소다.
미국은 자국에서 보조금 등 혜택을 받는 반도체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포함한 반도체 지원법(CHIPS Act)도 지난해 통과시켰다. 이달 가드레일 세부 지침을 내놓을 예정이다. 미국이 연일 규제를 더 하면서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보단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