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부산을 지역 기반으로 정치를 펼쳤던 두 명의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2023년 2월 25일은 특별한 하루다. 두 사람 모두 고인이 됐지만, 살아 있었다면 이날은 다른 날과는 다른 하루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1년 365일 가운데 2월 25일이 특별한 이유, 그 중에서도 2023년 2월 25일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은 날이기 때문이다.
2017년과 2022년 두 번 연속으로 대통령선거를 3월에 치렀지만, 원래 대선은 12월에 열리는 게 일반적이다. 과거에는 12월에 대선을 치르고 이듬해 2월 25일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월 25일은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바뀌는 중요한 날이다. 개인적으로도 중요하고, 국가적으로도 국군통수권자가 바뀌는 기준일이다.
정치인 김영삼은 1993년 2월 25일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정치인 노무현은 정확히 10년 뒤인 2003년 2월 25일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두 사람에게 2023년 2월 25일은 대통령 취임 30주년과 2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대통령 경력 30주년과 20주년을 맞이하는 두 명의 정치인이 과거를 회상하며 후대 정치인의 길잡이가 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애석하게도 그들의 육성으로 30주년과 20주년의 회고를 들을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불행이다. 국정운영의 경험, 외교의 노하우, 국가 대사를 맞이했을 때 풀어가는 혜안들은 후임 대통령들에게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김영삼과 노무현은 닮은 구석이 많은 정치인이다. 정치 스타일도 비슷했다. 저돌적이고 과감하며 거침없는 정치 행보는 그들의 매력이자 특징이었다.
정치인 김영삼은 박정희·전두환 군사 정부 시절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했던 민주화 투사다. 정치인 김대중과 더불어 한국 정치의 산맥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통일민주당(민주당)을 이끌던 정치인 김영삼이 민주정의당(민정당), 신민주공화당(공화당) 등과의 삼당합당으로 거대 공룡 여당 민주자유당을 출범한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정치적으로는 일생일대의 승부였다. 민정당 중심의 민자당에 들어가 대선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였다.
정치인 김영삼의 저돌적인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도전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결국 정치인 김영삼은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도약하지 않으면 낙오할 것이며, 변화와 개혁을 회피한다면 역사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보수정당인 민자당 후보로 대통령이 됐지만, 대한민국의 도약을 위해 국민 통합과 화합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24일 서울 동작구 김영삼도서관에서 열린 문민정부 30주년 기념식에서도 이런 메시지가 공유됐다. 이날 행사는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등 지도부와 한덕수 국무총리,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 등이 참석했다.
김영삼대통령재단 김현철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극심한 좌우 대립과 극단적 진영 대결로 거의 내전 상태"라며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하셨던 것처럼 아버님께서 남긴 유언이 바로 통합과 화합이었다"고 전했다.
정치인 노무현은 부산이 배출한 또 한 명의 대통령이다. 1988년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 출마해 당선됐는데, 부산 서구에 출마해 당선된 국회의원이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1988년 부산 서구와 동구의 국회의원이었던 정치인 노무현과 김영삼. 그의 주변인들은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될 줄 알았을까.
정치인 노무현은 김영삼 전 대통령 못지않은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을 경험했던 인물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키운 정치인이었지만 삼당 합당을 계기로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인 김대중이 이끄는 정당에 합류했고,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쪽의 정치적인 노선의 길을 닦았다.
민주당은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20년간 친노가 사실상 주류였다.
고졸 출신의 부산 정치인 노무현이 민주당의 주류 정치 세력을 키워가는 과정 자체가 역사다. 2002년 대선은 지금까지도 가장 극적인 명승부로 손꼽히는 선거다. 사실상 인터넷 선거의 시작이었고, 일반인들이 주축인 정치 팬클럽(노사모)의 파괴력을 보여준 선거였다. 정치인 노무현도 당시 민주당 주류가 밀었던 이인제 후보를 밀어내고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 자체가 극적이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2003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새 정부는 개혁과 통합을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치인 노무현의 다짐은 현실이 됐을까.
정치인 김영삼과 노무현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국가 어젠다를 제시했다. 하지만 1993년 2월 25일의 다짐도, 2003년 2월 25일의 다짐도 결국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목표와 현실 사이에 거대한 틈이 벌어져 있다. 소속 정당과 정치 노선은 차이가 있었지만, 대한민국을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는 목표는 일치했던 부산 출신의 대통령 두 명.
그들이 대통령 재임 시절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정치인 김영삼도, 정치인 노무현도 자기 임기 5년 후에 정권 교체를 지켜봐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들은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야당에 대통령 자리를 물려줬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재임 시절의 아쉬움은 결국 후회로 남는다.
그래서 2월 25일은 정치인 김영삼과 노무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도 특별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