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자본주의 근간 해치는 계급주의

[아시아경제 ] 많은 이들에게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질문을 던져본다. 대부분이 질문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공산주의 아니냐 반문한다. 여러 사전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음을 알고 있지만 다시 질문해본다. "그럼 조선 시대나 중세 봉건시대는 자본주의 사회였나요, 공산주의 사회였나요?"

자본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는 얘기는 필자에게는 마치 행복의 반대말이 배고픔이라는 답변처럼 부족하게 느껴진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님은 확실하지만, 자본주의가 아니면서 실제로 존재해왔던 여러 경제체제를 대표할 수 있는 용어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로마부터 중세유럽, 명나라, 고려, 조선 등을 거쳐 현대 옛 소련, 모택동 집권 중국, 현재 북한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라 볼 수 없는 국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왕, 귀족, 양반, 공산당, 백두혈통 같은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계급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없었다고 본다. 주장에 따라 다르지만,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로 거론되는 7세기의 베네치아공화국, 17세기의 네덜란드 공화국이나 영국 입헌군주국의 공통점은 의회에 의해 지도자가 선출되어 계급주의가 사라지고 시민들이 경제의 주축이 되었다는 데에 있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들을 근거로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계급주의 경제체제라고 주장한다.

재산, 직업 따위가 비슷한 사람들로 형성되는 집단의 사회적 신분이 변화 없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체계를 계급주의라 한다. 자본주의는 왕과 귀족 중심의 계급주의 경제체계를 타파하며 출생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기득권 같은 계급의 성격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이 계급의 성격이 자꾸만 공고해진다면 그 사회는 진정한 자본주의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컨대 만약 어느 자본주의사회에서 특정 지역만의 부의 수준이 크게 높아졌는데 그 지역 주민들이 세금 없이 부를 계속 대물림할 수 있게 되고 그 부를 이용하여 많은 정보를 독점하게 되며 교류와 혼인 등을 통하여 서로의 관계를 결속시키며 결과적으로 국가 행정과 사법의 요직, 언론이나 기업의 요직들을 독차지하여 자신들 집단에만 유리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아주 어두울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계급주의를 경계하기 위한 여러 보완책을 개발해 오고 있다. 예를 들자면 사회약자에 고급 교육과 고급 직업을 얻을 기회를 강제로 많이 할당해주는 주요 선진국들의 제도들은 일부 계층에서 주요 직군을 독점할 수 있는 폐단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 상속세나 보유세는 비싼 토지 등을 보유한 일부 계층들이 과거의 귀족과 양반처럼 아무 비용 없이 부를 세습하는 일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상속세나 보유세 등의 불합리성을 주장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온다. 실상은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이건만 반자본주의적이라는 누명까지 씌우는 듯하다. 세금 없이 부의 지위를 쉽게 세습하여 대대손손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인지상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부의 욕구가 우리 자본주의 시스템을 계급주의로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진짜 적은 계급주의이다.

서준식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