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비트]'사무실 출근하라'지침에 사직…재택근무發 '인재이동' 현실화[오피스시프트]④

'사무실 복귀' 놓고 경영진과 직원들 힘겨루기
사무실파 "이점 많다", 재택파 "유연성 필요"

편집자주[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로, 일(Work)의 변화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찐비트 속 코너인 '오피스시프트(Office Shift)'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시작된 사무실의 변화를 꼼꼼히 살펴보고 그동안 우리가 함께해온 실험을 통해 업무 형태의 답을 모색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여러분 곁으로 찾아갑니다. 40회 연재 후에는 책으로도 읽어보실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애플의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자였던 이언 굿펠로우는 2022년 5월 퇴사했다. 전 세계에서 머신러닝에 정통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30대 스타엔지니어가 퇴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애플이 같은 해 4월 일주일에 하루 이상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재택근무 기간 중 대면 협업의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언 굿펠로우(사진출처=굿펠로우 SNS)

IT 전문매체 더버지의 조이 쉬퍼 기자가 트위터에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굿펠로우는 자신의 퇴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더 많은 유연성이 우리 팀에 가장 좋은 정책이었다고 믿는다"면서 쿡 CEO의 결정에 반발해 퇴사한다고 밝혔다. 구글에서 힘들게 끌어왔던 인재가 애플을 떠나 구글의 AI 자회사인 딥마인드로 이동한 순간이었다.

굿펠로우의 사례에서 보듯 근무 환경의 변화가 인재의 행보를 결정짓는 상황이 됐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은 직장인이 당연히 따랐던 규칙이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경험한 지금 직원들은 경영진에게 사무실로 나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 고 있다. 재택근무의 생산성을 둘러싸고 경영진과 직원들의 견해차가 큰 상황에서 사무실 현장에서 '묘한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것이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섞은 하이브리드 근무의 경우 출근 일수를 놓고 줄다리기까지 하는 모양새다.

◆ GM, 공지했다가 연기…골드만삭스는 일부 복귀

특히 2022년은 미국에서 재택근무를 하던 기업들의 '사무실 복귀(Return To Office·RTO)' 선언이 쏟아졌던 해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급등과 같은 상황에 처하자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판단한 일부 기업이 기존의 업무수행 방식을 되살리기 위해 사무실에 출근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사례에서 본 것처럼 기업이 직원을 사무실로 복귀시키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해 9월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 계획을 발표했다가 나흘 만에 이를 올해 1분기 이후로 연기했다. CNBC방송 등에 따르면 GM은 지난해 말 최소 주 3일 직원들의 사무실 출근을 의무화 하겠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발표 이후 사내 게시판에 이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GM은 지난 2021년 4월 '적절하게 일하라(Work Appropriately)'는 이름의 유연근무제 시행안을 발표했었는데 회사가 기존 입장을 번복하자 직원들은 분노를 토해냈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인 디트로이트프리프레스에 따르면 GM 측은 계획 연기를 발표하는 이메일에서 "우리의 계획은 기업과 직원의 요구 사이에서 가장 균형을 이루는 솔루션을 설계하는 것이었다"면서 "일주일 중 어떤 요일이 협력을 위한 날이 될지 의무화하지 않을 계획이다. 2023년 1분기 전에 '적절하게 일하라'의 진전은 없을 것"이라고 알렸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어떨까. 코로나19를 겪은 뒤 일부 직원들이 월가에 있는 사무실로 복귀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19 초기부터 재택근무를 ‘일탈’이라고 표현하며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사무실 근무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미국 포천지 등에 따르면 팀워크를 핵심으로 한 골드만삭스의 문화적 기반을 유지하면서 직원 교육이 대면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골드만삭스는 직원 절반 이상이 20대 사회 초년생이다. 솔로몬 CEO는 2022년 2월 전 직원에게 공식적으로 사무실로 복귀하라고 선언했고, 같은 해 9월 코로나19를 이유로 재택근무를 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솔로몬 CEO가 지난해 10월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주 5일 사무실 출근 직원의 비중은 75%였다. 코로나 이후 공식 사무실 복귀 첫 날인 2022년 2월 직원의 사무실 출근 비율은 50%였고, 같은 해 10월 65%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이전과는 10%포인트가량 차이가 났다. 솔로몬 CEO는 CNBC와의 인터뷰 두 달 뒤인 같은 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WSJ) 콘퍼런스에서 "분명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팬데믹 이전과 꽤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다"면서도 "금요일은 조금 다르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니콜라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 등 연구진이 지난해 5월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기업이 주 5일 출근을 요구했지만, 직원의 절반가량이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으며, 고용주 10명 중 4명은 이에 별다른 조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 '사무실파', "사무실은 협업·교육의 공간, 이점 많다"

사무실 출근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명 '사무실파'는 대면 협업을 강조한다. 재택근무 기간이 길수록 상사, 동료와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며 얻는 효율성과 생산성이 사라진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사무실 출근은 얼굴을 보며 관계를 맺고 직장에 소속감을 갖고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얻는 생산성 향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월트디즈니는 2023년 3월 1일부터 직원들에게 주 4일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지시했다.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지난 몇 달 동안 회사 전체 팀을 만나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의 엄청난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면서 "우리와 같이 창의적인 비즈니스에서 물리적으로 함께하며 동료들과 협업하고 전문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IT 업계 중 게임업계가 지난해 6월 사무실 복귀를 선언할 당시 이유를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팀으로 활동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효율적인 소통이 필요한데 재택근무가 이를 저해한다고 본 것이다. 신작 개발에 차질을 빚어진 이유가 재택근무라는 평가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바로 옆에 앉아 얼굴을 보고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게임 업계의 설명이다.

재택근무 여파로 코로나19 기간 중 어려움을 겪었던 교육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신입이나 젊은 직원은 사무실이라는 환경에서 상사에게 업무를 배우며 성장해왔다. 비언어적인 교육, 그야말로 보고 배우는 업무가 있는데 비대면 환경에서는 이러한 교육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올해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도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가 젊은 직원, 자발성, 관리 측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 '재택근무파', "개인에 맞는 유연한 업무 환경 마련해야"

사무실 복귀를 거부하는 일명 '재택근무파'는 새로운 근무 형태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원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의 차이가 있는 만큼 근무 환경이 유연하면 각자가 본인에게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트북 하나면 업무가 가능한 직무의 경우 근무 환경을 사무실로 고정하지 않아도 성과를 낼 수 있고 코로나19 기간 중 실적이 좋아진 것 등이 증거라고 주장한다.

사무실에 출근하더라도 업무하는 방식이 재택근무와 큰 차이가 없는데 굳이 사무실에 나가야 하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지난해 5월 애플이 최소 주 3일 사무실 출근을 지시하자 직원들은 '애플투게더'라는 단체를 만들어 사무실 출근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 등에 따르면 애플투게더는 "지난 2년간 업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직속 상사와 근무 방식을 논의해 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직원의 반발에 부딪힌 애플은 올해 미국의 익명 직장평가 플랫폼 글래스도어에서 '2023년 일하기 좋은 100대 직장'에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제외됐다.

<애플투게더 청원서의 주요 내용>
△ 경영진은 사무실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경험을 의미있게 말하지만 우리는 단 하나의 사무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의도적으로 연락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끔 필요로 하는 대면 협업을 위해 전원이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오히려 원격으로 일하면서 국제 협력이 가능해졌다.△ 사무실 출근 일수를 고정하는 건 오히려 유연성을 해치는 일이다. 각자의 업무에 따른 적합한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피로도가 굉장히 높다. 통근은 정신적, 육체적 자원 뿐 아니라 시간도 낭비한다.△ 회사의 정책 조정은 직원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 사무실에 출근할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객에게 애플의 제품을 활용하면 원격 근무를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재택근무를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사무실 복귀는 애플의 직원과 제품 뿐 아니라 결국 고객에게 좋지 못한 정책이다.(출처 : 애플투게더 홈페이지)

아울러 출퇴근을 안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주장도 있다. 블룸 교수 등이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은 평균 1시간 12분 감소했다. 한국에서는 1시간 26분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통근 시간이 가장 많이 감소한 곳은 중국으로 1시간 42분이었다. 직장인 설문조사에서 재택근무를 해서 가장 좋은 점을 물으면 대부분 ‘출퇴근을 하지 않아서’라는 답변이 나온다. 재택근무파는 출퇴근에 소모되는 시간과 체력을 아껴 오히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제2팀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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