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완용기자
[아시아경제 차완용 기자] 미분양 주택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작년 12월 말 기준 통계로 잡힌 미분양 주택수는 6만8107가구다. 정부가 ‘미분양 위험선’으로 판단하는 6만2000가구를 훌쩍 넘어섰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기록한 역대 최대치(16만5641가구)에 비해선 적은 숫자지만, 반년 만에 4만 가구 이상 급증하는 등 속도가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14일 아시아경제가 국토교통부 미분양주택 현황보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작년 전체 미분양 주택 증가수는 5만397가구(2021년 12월 1만7710→6만8107)로 이 중 4만197가구가 하반기(7~12월) 6개월 동안 발생했다. 반기 기준 증가세는 정부가 미분양 집계를 시작한 1993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미분양 주택수가 10만 가구를 넘어섰던 외환위기(1997~1998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당시에도 이 같은 급등세는 없었다. 연간(연말 기준) 역대 미분양 주택 증가량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2007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로 5만2518가구(11만1366가구→16만3884가구)가 늘었지만, 매월 꾸준히 증가하는 패턴을 보였다. 4만6807가구의 미분양 주택이 늘어났던 1994년 12월(10만5506가구)부터 1995년 12월(15만2313가구) 역시 마찬가지다.
더 큰 문제는 미분양 주택수는 최근 들어 더욱 가팔라지는 추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작년 11월 한 달 새 1만810가구 늘어난 데 이어 12월에도 1만80가구가 증가하는 등 두 달 연속 1만 가구 넘게 급증했다. 증가율도 지난해 9월 27.1%, 10월 13.5%, 11월 22.9%, 12월 17.4% 등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미분양은 서울과 수도권보다는 지방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작년 12월 기준 지방 미분양 주택은 5만7072가구로 전달보다 19.8% 늘었다. 수도권의 경우 1만1035가구로 전달보다 6.4% 증가했다.
서울 미분양 주택은 전체적인 규모가 크지 않다. 다만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작년 12월 서울 미분양 주택은 953가구로 전달보다 10.2% 늘었다. 지난 2021년 12월에는 54가구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게 증가세다.
급격한 금리 인상과 시장 침체 등으로 거래 절벽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미분양 주택 증가에 힘을 보태고 있다. 12월 주택 매매 거래량은 2만8603건으로 지난해 12월보다 46.8% 감소했다. 지난해 누적 주택 매매량은 50만8790건으로 전년보다 49.9% 줄었다. 연간 주택 매매량은 지난 2020년 127만9000건, 2021년 101만5000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르면 상반기 늦어도 연말이면 미분양 주택이 10만 가구에 달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초기 분양률 하락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 미분양 아파트는 9만 가구까지 늘어날 수 있고 시장 위축 정도에 따라 11만 가구까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지난해 연기했던 물량 5만 가구와 올해 분양물량 10만 가구를 합치면 15만 가구가 넘는다"며 "반토막 분양률을 적용해도 기존 미분양과 합산하면 상반기 중에 10만 가구를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미분양 주택 급증 상황의 심각성을 놓고 건설업계와 정부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건설업계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지방 중소 건설사를 중심으로 줄도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는 반면 정부는 악성 미분양, 즉 준공 후 미분양이 심각한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작년 12월 기준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은 7518가구로 1년 전(7449가구)과 거의 비슷하다.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2009년 3월의 5만1796가구와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당장 악성 미분양이 적긴 하지만 최근의 흐름이 이어질 경우 급격하게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은 일반 미분양만 늘고 있지만, 점차 준공을 완료한 사업장이 늘면서 2~3년 안에 악성 미분양이 빠르게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다.
차완용 기자 yongcha@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