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게이트 前史]②로비스트로 등판해 시행업자로 변신

편집자주김만배(58)는 대장동 사건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검찰, 법원, 정치권이 모두 그의 입에 주목하고 있다. 김만배의 공식 직업은 기자였다. 1992년에 기자로 입문해 대장동 사건이 터질 때는 경제지 부국장대우 기자로 활동했다. 김만배가 현직 기자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수천억원대를 주무르는 부동산 시행업자 생활을 이중으로 할 수 있었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김만배의 시행업자 입문 전 행적과 대장동 사업권을 손대기까지 행적을 취재했다.
대장동 해결사로 등장한 김만배

김만배는 뉴시스 수도권본부에서 일할 때에도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다만 투자할 돈이 없었다는 게 주변의 공통적인 증언이다. 김만배가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으로 서초동에 막 입성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원에서의 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고 한다. 존재감은 물론이고, 씀씀이 역시 크지 않았다는 얘기가 지배적이다.

김만배가 달라진 건 2000년대 중후반 때부터로 전해진다. 그의 본가가 있던 이목리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할 무렵이다. 주변인들은 그의 집안이 당시 개발사업으로 보상비를 톡톡히 챙겼다고 말한다. 김만배의 한 고등학교 동문은 "집안이 보상을 받으면서 김만배도 부동산 시행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수원지역에서는 당시 보상 이후 그의 집안이 상가 등에 재투자를 했는데, ‘부동산 훈풍’ 영향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만배의 씀씀이가 커진 것도 이때 무렵으로 알려졌다.

김만배 역시 보상 뒤 부동산 투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규모 등에 대해선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역에서 "김만배의 형은 투자를 잘해 돈을 번 반면, 김만배는 투자에 실패했다" 등 출처가 불분명한 얘기가 전해지는 정도다. 다만 부동산 투자 여부 등을 떠나 재력이 뒷받침되면서 서초동에서는 김만배 특유의 붙임성은 극대화됐다고 한다. 성격도 거침없었던 데다 베푸는 정도도 ‘화통’ 그 자체였기에 주변에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향후 화천대유 자회사 천화동인 7호 소유주인 배성준 전 YTN 기자(이후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을 맡음)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당시인 것으로 보인다.

김만배가 대장동 개발사업에 뛰어든 것도 배 전 기자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배 전 기자가 2010년 전후로 대장동 판을 짜고 있던 남욱 변호사를 소개해준 것이다. 당시 남 변호사는 대장동에서 이른바 ‘지주작업’을 하며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2010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당선되면서 골머리를 썩게 됐다. 이 시장이 관내 모든 대형 개발사업을 공공개발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 변호사는 당시 변호사법 및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대장동 사업 진행과 가속화되는 검찰 수사에 맞서 자신의 능력을 능가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해결사’로 영입하게 된 사람이 바로 김만배였다.

대장동 사업 초기 김만배는 시행업자가 아닌 로비스트로 등장한다. 정영학 회계사 녹취록에서도 이 부분이 드러난다. 김만배는 정 회계사와 통화에서 스스로를 '대장동 로비스트'라고 칭한다. 수사당국은 김만배가 대장동에 등판한 뒤 남 변호사의 민원을 관철시킬 첫 로비 상대로 최윤길 전 성남시의장을 조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이던 최씨는 2012년 의장 후보자를 선출하는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상태였다. 그러나 3선을 거치면서 시의원 자리에 이골이 나면서 의장직을 갈망했고, 경선 결과를 무시한 채 의장 선거에 출마했다는 게 수사당국의 시선이다.

김만배는 이런 최씨를 상대로 '학연'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으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성균관대 동문인 성남시의회 민주통합당 대표 윤창근 의원을 통해 민주당 의원들이 표를 몰아주도록 했다는 의혹이다. 지난해 초 경찰이 발부받은 최씨의 구속영장을 보면, 당시 김만배는 "의장직을 제공해줄 테니 의장이 되면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이 통과되도록 도와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최씨는 의장이 됐고, 2013년 2월 공사 설립 조례안은 통과됐다.

김만배에게 성남시설관리공단에서 근무하던 유동규씨를 소개해준 것도 이 무렵으로 전해진다. 공사가 출범하며 기획본부장으로 영입된 유씨는 민간사업자로 화천대유 등이 참여한 하나은행 컨소시엄을 선정하고, 특수목적법인(SPC) '성남의뜰'의 주주 구성을 설계하는 데 기여한다. 민간사업자들이 수익 배분을 설계하고 수천억원을 챙길 수 있도록 하는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시행업자로 변신…인맥 쥐고 흔들다

김만배는 2015년 2월 '화천대유'라는 낯선 이름의 자산관리회사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시행업자로 나선다. 여기에 남 변호사가 그해 6월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구치소에 가면서 대장동 사업 중심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는 게 복수의 관계자들 얘기다.

화천대유 설립 후 김만배는 특유의 붙임성으로 형성한 인맥들과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어간다.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대표적 사례다. 화천대유 설립 첫해 이 회사에 취업한 곽 전 의원 아들은 훗날 퇴직금과 성과급으로 50억원을 받는다. 이 50억원은 지난 8일 1심 재판에서 뇌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사회통념상으로 비춰봐도 금액이 이례적으로 과하긴 하지만, 대가성은 없다는 의미다. 2016년에는 박영수 전 특검이 화천대유 상임고문으로, 그의 딸은 회계사로 각각 취업했다. 이후 박 전 특검은 '최순실 게이트' 특검으로 임명되며 화천대유를 떠났지만, 남아 있던 딸은 회사로부터 대장동 아파트를 시세의 절반 값으로 분양받게 된다.

김만배가 법조기자 시절 인연을 쌓은 인물들도 각각의 연결고리를 안고 화천대유에 모습을 드러낸다. 2020년 10월 퇴임 직후 화천대유의 고문이 된 권순일 전 대법관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는 퇴임 두 달여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을 무죄 취지로 환송할 때 '캐스팅 보트'였다. 김만배는 이 선고 전후로 최소 8차례 그의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무죄라는 결과와 고문 취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재판 거래' 의혹으로 불거졌고, 대장동 사건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접점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2019년 법무법인을 통해 화천대유와 법률 자문 계약을 맺었다. 김 전 총장은 수원지검장이던 2012년 최윤길 전 성남시의장의 뇌물수수 사건을 지휘했다. 이 역시 김만배의 청탁이 있었다는 남 변호사의 진술이 있는데, 실제로 최 전 의장은 그해 말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시기를 앞둔 2012년 8월 녹취록에서는 김만배가 '윤갑근 차장(당시 성남지청장)을 만나러 간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도 검사 퇴임 이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법률 자문을 했다. 이 시기 강 전 지검장은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친형 강제입원 등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의 변호인단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또 2015년 남 변호사가 구속 기소된 대장동 로비사건을 지휘했다.

김만배는 학연도 잊지 않고 챙겼다. 수성고 선배인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도 2020년부터 1년 정도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원 전 대표의 부인도 고문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월급을 타갔다. 이밖에 화천대유 대표로 이름을 올린 이성문씨, 이재명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이화영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천화동인 1호 사내이사를 맡은 이한성씨 등은 김만배와 성균관대 동문이다.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하나둘 옥죄어지는 김만배 인맥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은 전방위적으로 김만배 인맥을 옥죄고 있다. 남 변호사, 정 회계사를 시작으로 곽상도 전 의원, 이한성씨 등 그의 주변을 차례로 재판에 넘기면서 김만배를 압박하고 있다. 표면적 목표는 김만배가 대장동에서 배임 범죄로 챙긴 막대한 수익을 환수하는 것이다. 김만배가 대주주인 화천대유는 대장동 사업으로 배당금 577억원을 챙겼다. 화천대유가 지분 100%를 가진 천화동인 1호의 배당금은 1208억원, 김만배 가족들이 대표인 천화동인 2호와 3호 배당금은 각각 101억원이다. 김만배 측이 200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챙긴 것이다. 실소유주 논란이 제기된 천화동인 1호의 배당금을 제외하더라도 엄청난 액수다.

검찰은 대장동 사업 비리의 본류 수사를 마친 뒤 이른바 '50억 약속 클럽' 등 제기된 의혹들의 실체를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정영학 녹취록에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인물은 박영수 전 특별검사, 곽상도 전 의원, 김수남 전 검찰총장,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권순일 전 대법관, 홍선근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회장 등 6명이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이들 외에도 전·현직 법조계 인사가 더 거론된다. 주로 수원이나 성남 지역에 근무했던 법조인이다. 검찰은 곽상도 전 의원의 50억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과 별개로 관련 수사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압박 전술에 김만배의 빗장이 풀릴 지는 미지수다. 뇌물공여나 불법 정치자금 공여 등의 혐의가 그에게 추가될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이 거미줄처럼 펼쳐온 맥에 해당하는 주변 지인들이 대거 처벌 대상에 오를 수 있어서다. 출소 후 사회적 재기를 염두에 두고 가장 큰 자산인 인맥을 남기는 선택을 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다만 심리적 타격 효과는 분명하다. 김만배는 지난해 12월 측근인 화천대유 공동대표 이한성씨와 쌍방울그룹 부회장과 화천대유 이사를 지낸 최우향씨가 체포되자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김만배는 치료를 마친 뒤 지난달 13일 대장동 사건 재판에 출석하면서 "저 때문에 무고한 주변 분까지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 같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장동 사건의 또 다른 축으로 분류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수사는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김만배는 당초 사업을 이끌던 남 변호사가 2015년 5월 구속된 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과 친분을 쌓으며 사업 주도권을 가져갔다. 이 과정에서 김만배와 연결된 인물들은 이미 상당수 재판에 넘겨졌다. 유 본부장을 비롯해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이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이 대표를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이 대표를 상대로 측근인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 등이 김만배로부터 대장동 수익 중 428억원을 약정받은 혐의,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남욱 변호사로부터 8억4700만원을 받은 혐의와 관련해 관여 여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만배는 그동안 이 대표를 겨냥한 폭로를 한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본부장과 달리 그의 연루 의혹에 대해 침묵을 고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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