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리기자
[아시아경제 최유리 기자] 지난 8일 경기 시흥시 배곧1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선 초고압선 반대 집회가 열렸다. 배곧신도시 주민들이 결성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비롯해 지역 주민 수십명이 모였다. '초고압선 즉각 철회', '주민 생명 위협하는 한전 강력 규탄' 등 현수막과 피켓을 든 주민들은 이날 한국전력에서 진행하려던 전력구 건설사업 설명회까지 무산시켰다. 주민 반발에 시흥시는 한전에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고 한전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전력의 전력구 건설사업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며 애꿎은 피해는 카카오로 이어진다. 최근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이 시급한 카카오 입장에서는 내년 문을 여는 안산 데이터센터와 함께 시흥 데이터센터 완공이 급선무지만 전력선 자체가 들어오지 못하면 데이터센터 가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된다.
신시흥과 신송도를 잇는 송전선로 준공 사업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카카오도 긴장하고 있다. 카카오는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에 전력량 100메가와트(MW) 규모의 제2데이터센터를 계획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현재 시흥변전소의 부하가 공급력을 초과해 변전소의 조속한 건설이 필요하다"며 "시흥에 대규모 사업체나 대단지가 들어올 때 과중을 막기 위한 것인데 공사 진행이 안 되면 전력 공급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제1데이터센터가 본격 가동되는 2024년 제2데이터센터 착공에 들어가 2026년 준공을 완료할 계획이다. 도시계획 인허가 등 행정 절차와 세부 부지 선정이 남아있어 주민 반발에 따라 진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미리 투자를 결정하고도 추진 초기부터 걸림돌을 만난 셈이다.
카카오가 데이터센터를 추진키로 한 것은 2018년이다. 매출이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지만, 전방위 투자로 영업이익률이 3%에 불과했던 시기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사업 분야를 확대하면서 인프라 투자도 고려했다는 의미다. 다만 추진부터 가동까지 최소 4~5년 소요되는 상황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백업 시스템 부실로 카카오 먹통 사태까지 이어졌다. 시스템 부실에 대한 책임론을 피할 수 없지만 플랫폼사에 필수적인 데이터센터가 지역 반발에 지연될수록 먹통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안산시에서 적극적으로 유치한 카카오 제1데이터센터는 착공에 들어가 2024년 1월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가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카카오는 산학시설 등 투자 협력에 나선 결과다.
안산시는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2020년 3월 부지 지정을 신청하고 국토교통부 승인을 받았다. 데이터센터 유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관련 행정 지원, 투자 협력을 추진했다. 카카오는 4000억원을 투자해 안산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 데이터센터와 산학협력 시설을 짓기로 결정했다. 안산시는 시설 유치로 ▲생산유발효과 8036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3715억원 ▲일자리 창출 효과 2700명 등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카카오 제1데이터센터는 10만대 이상의 서버를 운영할 수 있는 초대형 규모로 들어설 예정이다. 총 12만 대 서버에 저장 가능한 데이터양은 6엑사바이트(EB)에 달한다. 이를 통해 카카오는 자체 재해복구(DR)단계가 핫 사이트 수준(주 사이트와 동일한 시스템을 하나 더 운영하는 미러사이트 다음으로 주 사이트에 버금가는 설비·자원을 구축한 단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불이 나도 전력 중단이 없도록 재난 대응 능력에 초점을 맞췄다. 화재 발생 시 대응 시나리오를 1~4단계로 나눠 전력 중단 가능성을 최소화한다는 설명이다. 진화 시스템은 ▲스파크 발생이나 온도 상승 시 무선전원장치(UPS)실, 배터리실 판넬 내부 소화기 작동 ▲배터리실 내 소화가스 작동 ▲화재 발생 구간 차단 및 냉각수 분사 ▲소방서 진화 순서로 진행된다. 아울러 소방당국과 맞춤형 화재 대응 매뉴얼을 공동 개발하고 정기적으로 합동 모의 소방훈련을 할 계획이다. 진화 작업을 대비하는 데 필요한 비용 전액은 카카오가 부담한다.
어떤 상황에도 전력 공급 공백이 없도록 하는 준비 작업도 진행 중이다. 남안산변전소로부터 4만킬로와트(㎾) 전력을 공급받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주전력 공급이 중단되면 성포변전소를 통해 예비 전력을 이용한다. 회선 문제 발생에 대비, 600억원을 들여 제1·2 데이터센터 간 전용선을 깔기로 했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는 "무엇보다도 인프라, 인력 등 여러 가지 예산을 확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자체 데이터센터는 이번 사고를 교훈 삼아 방화, 내진과 같은 방재시설을 더 안전하게 구축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최유리 기자 yrchoi@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