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IT 서비스 발전 더딘 이유 ... '업무위탁제도' 규제 걸림돌

[아시아경제 이은주 기자] 은행들은 열심히 ‘디지털'과 ‘IT’를 강조하면서 서비스 편의성을 높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은행앱 이용자들은 여전히 불편함을 느낍니다. 앱은 자주 버벅거리고, 메뉴들은 번잡해 이용자들은 때로 갈길을 잃습니다. 태생이 IT기업인 빅테크 기업들이 제공하는 은행앱들보다는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면 왜 은행은 그 많은 ‘자산’과’ 돈’을 가지고서 이정도 서비스밖에 제공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변화가 더딘 금융권의 보수주의가 원인일까요? 태생이 IT기업이 아닌 전통 금융사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까요? 한번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은행들은 자사가 가지고 있지 못한 IT역량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가지 규제들 때문입니다.

큰 기업들은 보통 자사가 가지지 못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 이미 해당 분야에서 똘똘하게 노력하는 중소형 기업들을 인수하는 방법을 택하곤 합니다. 경쟁력을 빠르게 흡수하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은행의 경우 잘 알려진 ‘은산분리’ 규제로 인해, IT 기업들의 경쟁력을 흡수하기가 어렵습니다. 은행들은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라 은행업, 금융투자업, 보험업 같은 15개 금융관련분야만 자회사로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은행들은 UI/UX 디자인 회사나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인수를 통해 경쟁력을 자사로 흡수해 서비스를 고도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타사의 도움도 쉽사리 받기 힙듭니다. ‘아웃소싱’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다른 회사의 도움을 받아서 일부 업무를 외주화할 때도 ‘업무위탁’ 규정의 제한을 받기 때문인데요. 은행들은 ‘금융위원회 설치에 관한 법률’의 하위규정에 따라서 업무위탁을 두는 데 제한을 받습니다. 규정에 따르면 은행들은 금융사의 ‘본질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업무위탁을 줄 수 없습니다. 은행이 뛰어난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가지고 부동산담보평가 업무를 할 수 있는 IT기업에 업무를 아웃소싱하려고 해도, 본질적 업무 위탁 금지 조항으로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은행이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기도, 투자하기도, 업무를 위탁하기도 어려운 구조로 오랜 시간이 흘러왔습니다. 이로 인해 빅테크, 핀테크와의 자유로운 협력이 어려워 더더욱 뒤쳐진다는 목소리가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된 지도 오래입니다. 문제는 빅블러 시대. 점점 금융사의 판단력도, 협상력도 점점 더 뒤쳐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IT역량을 발전시키지 못한 상황에서서, 설사 주요 IT 업무를 '외주'하거나 '협력'을 통해 진행하더라도 이를 관리하는 역량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위탁 업무를 상세히 파악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역량을 내재화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위탁을 준 기업의 ‘알고리즘’에 대해서, 혹은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해서 경쟁력이 있는지, 제대로 운영이 되는지를 판단하고 감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경쟁력 악화의 악순환입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역할과 경쟁력을 재점검하고 규제를 새롭게 짜는 것이 요즘 금융권 안팎의 고민입니다. 금융회사의 투자범위와 부수업무를 확대하고, 업무위탁에 대해서는 본질적인 업무에 대해서도 위탁할 수 있도록 은행의 ‘운용범위’를 넓혀줄 때가 됐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됐습니다. 다행히 이같은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금융당국도 규제의 변화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민간과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금융규제가 금융서비스의 발전과 고도화를 이끄는 방향으로 개선될지에 대해 업권의 기대와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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