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필기자
공병선기자
오규민기자
[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공병선 기자, 오규민 기자] 문해력 저하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공교육 현장을 꼽는다. 이미 학교에선 국어가 수학이나 영어에 밀린 지 오래다. 독서나 글쓰기 경험을 충분히 제공할 수 없는 환경이란 얘기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건 가정교육의 영역이라는 묵은 사회적 인식이 한몫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시안에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빠진 것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으로 해석 가능하다. 개선 여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향후 국어 교육부터 사실상 제자리걸음이 예고됐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살펴보면, 초등 1~2학년 국어 교육 시간은 482시간으로 편성됐다. 현 교육과정 448시간보다 34시간 늘어난 수치다. 취학 초기부터 기초 문해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조처라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그러나 이후 교육과정을 보면 교육부 설명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고등학생 필수 국어교육이 줄어든다. 현행 10단위에서 8학점(과목별로 한 학기 4학점)으로 줄어 141.7시간에서 106.7시간으로 35시간 감소한다. 여기에 초등 3~6학년과 중등 1~3학년의 국어 교육 시간은 현행 816시간과 442시간으로 각각 유지된다. 결론적으로 개정 교육과정으로 초·중·고교 12년 동안 받는 국어 수업 시간은 모두 2060.1시간으로, 현행 2131.1시간보다 오히려 71시간 줄어드는 셈이다.
교육부는 수업 시간, 즉 '양(量)'이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교 학점제로 바꾸면서 학생들의 선택 폭을 늘린 것"이라며 "융합 선택 과목 등 심화교육을 선택하는 경우를 고려하면 국어교육 시간이 기존 교육과정보다 축소되거나 약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전문가들 '질(質)'을 떠나 절대량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각 나이마다 익혀야 할 어휘나 글 수준이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교육 과정이란 지적이다. 서혁 이화여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캐나다의 경우 국어 교육 과정을 전체 과목의 55% 정도 배정하고 있다"며 "현재 한국은 절대적으로 국어 교육 시수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기초 문해력 강화를 내건 교육과정에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빠진 것도 논란이 됐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국어 수업과 독서를 연계한 것으로, 수업시간에 책을 읽고 학생들이 토론하는 활동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교육부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표현이 일부 도서와 특정 횟수에 한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활동을 새 교육과정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활자화된 문자만 읽히는 게 아니다"라며 "짧은 글, 디지털 문해력, 미디어 문해력 교육 등을 교육과정에 새로 포함했다"고 부연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등 교사단체는 성명을 통해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단순히 한 권 읽기로 치부하고 삭제하려는 의도는 국어교육과 초등교육의 가치를 너무도 좁은 눈으로 보는 무지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학부모들도 교육부가 의견 수렴을 위해 개통한 '국민참여소통채널'을 통해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다시 반영해달라는 글을 잇달아 올렸다. 교육부는 결국 지난달 말 수정안을 통해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여전한 상황이다.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한다. 교육부가 국어과 교육, 나아가 문해력 강화를 위해선 독서의 가치를 보다 높게 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기도 하다.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고전을 읽고 쓰는 교육을 통해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며 "인문학 강의 등을 경영에 쓰는 도구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고 했다. 서혁 교수도 "인류가 쌓아온 고도의 지식과 경험의 총체인 책은 고급 수준의 문해력이 담겨 있다"며 "디지털 문해력 교육 등으로 전체 문해력이 상승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