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뜻 모르는 우리③] 영·수에 밀린 국어… 공교육부터 문제

허울뿐인 외침 '문해력 강화'
2022 개정 교육과서 시안서
초중고 국어수업 71시간 줄어
전문가들 "절대량 부족" 지적
'한 학기 한 권 읽기'도 빠져
문해력, 독서 통해 강화 필요

편집자주한글이 사흘 뒤면 576돌을 맞는다. 조선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면서 얻게 된 우리글이다. 우리 민족 문화의 생명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 한글이 처한 상황은 어렵다. 읽을 줄 알아도 이해를 못 하는 국민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문해력 저하 현상으로 불린다. 문해력이 부족한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글을 읽는 훈련을 놓아버린 우리 모두의 문제다. 본지는 제576주년을 맞는 2022년 한글날을 맞아 문해력 저하 실태를 짚으며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전경 /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공병선 기자, 오규민 기자] 문해력 저하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공교육 현장을 꼽는다. 이미 학교에선 국어가 수학이나 영어에 밀린 지 오래다. 독서나 글쓰기 경험을 충분히 제공할 수 없는 환경이란 얘기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건 가정교육의 영역이라는 묵은 사회적 인식이 한몫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시안에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빠진 것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으로 해석 가능하다. 개선 여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향후 국어 교육부터 사실상 제자리걸음이 예고됐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살펴보면, 초등 1~2학년 국어 교육 시간은 482시간으로 편성됐다. 현 교육과정 448시간보다 34시간 늘어난 수치다. 취학 초기부터 기초 문해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조처라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그러나 이후 교육과정을 보면 교육부 설명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고등학생 필수 국어교육이 줄어든다. 현행 10단위에서 8학점(과목별로 한 학기 4학점)으로 줄어 141.7시간에서 106.7시간으로 35시간 감소한다. 여기에 초등 3~6학년과 중등 1~3학년의 국어 교육 시간은 현행 816시간과 442시간으로 각각 유지된다. 결론적으로 개정 교육과정으로 초·중·고교 12년 동안 받는 국어 수업 시간은 모두 2060.1시간으로, 현행 2131.1시간보다 오히려 71시간 줄어드는 셈이다.

교육부는 수업 시간, 즉 '양(量)'이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교 학점제로 바꾸면서 학생들의 선택 폭을 늘린 것"이라며 "융합 선택 과목 등 심화교육을 선택하는 경우를 고려하면 국어교육 시간이 기존 교육과정보다 축소되거나 약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전문가들 '질(質)'을 떠나 절대량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각 나이마다 익혀야 할 어휘나 글 수준이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교육 과정이란 지적이다. 서혁 이화여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캐나다의 경우 국어 교육 과정을 전체 과목의 55% 정도 배정하고 있다"며 "현재 한국은 절대적으로 국어 교육 시수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기초 문해력 강화를 내건 교육과정에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빠진 것도 논란이 됐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국어 수업과 독서를 연계한 것으로, 수업시간에 책을 읽고 학생들이 토론하는 활동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교육부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표현이 일부 도서와 특정 횟수에 한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활동을 새 교육과정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활자화된 문자만 읽히는 게 아니다"라며 "짧은 글, 디지털 문해력, 미디어 문해력 교육 등을 교육과정에 새로 포함했다"고 부연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등 교사단체는 성명을 통해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단순히 한 권 읽기로 치부하고 삭제하려는 의도는 국어교육과 초등교육의 가치를 너무도 좁은 눈으로 보는 무지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학부모들도 교육부가 의견 수렴을 위해 개통한 '국민참여소통채널'을 통해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다시 반영해달라는 글을 잇달아 올렸다. 교육부는 결국 지난달 말 수정안을 통해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여전한 상황이다.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한다. 교육부가 국어과 교육, 나아가 문해력 강화를 위해선 독서의 가치를 보다 높게 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기도 하다.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고전을 읽고 쓰는 교육을 통해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며 "인문학 강의 등을 경영에 쓰는 도구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고 했다. 서혁 교수도 "인류가 쌓아온 고도의 지식과 경험의 총체인 책은 고급 수준의 문해력이 담겨 있다"며 "디지털 문해력 교육 등으로 전체 문해력이 상승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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