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기자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사상 최대 호황에서 사상 최대 불황으로"
지난해 사상 최대 호황을 구가했던 글로벌 기업공개(IPO) 시장이 끝모를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투자와 밈 문화까지 가세해 주식 투자 붐을 이끌었던 미국 시장에서의 낙폭은 더 컸다. 각국 정부의 고강도 긴축 정책으로 글로벌 증시가 회복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IPO 시장 침체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6일(현지시간)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EY와 딜로직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글로벌 IPO 규모는 954억달러(약 136조4220억원)로, 전년 동기(2276억달러) 대비 58%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미국 IPO 시장 규모는 50억달러로 전년 동기(950억달러) 대비 95%나 감소했다. IPO에 나선 기업들의 숫자도 글로벌과 미국 시장에서 각각 46%, 73% 줄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PO 시장이 최근 10여년 래 가장 둔화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계속된 돈풀기로 갈 곳 잃은 자금이 증시로 몰리면서 연초부터 과열 양상을 보였다. 특히 전통적인 IPO 외에도 스팩을 통해 증시에 입성한 기업들이 IPO 활황을 주도했고, 개인투자자들도 시세차익이 높은 스팩 투자에 열광하며 열풍을 주도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서 이어진 각국 정부의 고강도 긴축 정책과 인플레이션으로 유동성이 메마르자 투자심리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팩을 비롯해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IPO 시장 침체도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IPO에 나서려는 수요도 함께 줄고 있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상장된 기업의 87%가 현재 공모가 아래로 거래되고 있다. 미 의료보험사 오스카헬스와 의류 렌탈 업체 렌트더런웨이의 주가는 IPO 이후 공모가 대비 각각 85% 아래로 주저앉았다. 온라인 주식거래 플랫폼 로빈후드와 결제대행업체 마르케타도 70% 이상 떨어졌고, 외식업체 토스트와 온라인 교육업체 코세라는 공모가 대비 반토막이 났다.
이 같은 주가 약세는 뉴욕증시 주요 지수의 낙폭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같은 기간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는 올 들어 23% 하락했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31% 떨어졌다. 특히 이날 S&P500지수는 전장대비 38.19포인트(1.03%) 떨어진 3655.04로 연중 최저치(3666.77)를 갈아치웠다.
언스트앤영의 IPO 담당 책임자인 마크 슈와츠는 "IPO 기업들의 주가 부진이 투자자들의 신뢰도를 낮추며 시장 침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IPO 시장 추락 배경에는 금리 인상과 초인플레이션이 자리한다. 미 CNBC방송은 "금리와 환율 영향으로 금융투자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투자자들은 고위험 성장주 대신 안전 자산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즉각적인 금리 인하 기조로 전향할 가능성이 난망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계속해서 IPO 시장을 외면할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언스트앤영 미국 법인의 IPO 부문 책임자인 레이첼 게링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투자자들은 위험을 회피하고 있고, 이것이 IPO 시장 둔화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에 성장성에 베팅하던 투자자들이 올해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투자처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