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잇수다] 갤러리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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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앤디 워홀은 "유명해지려면 중개인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당대 거장으로 부각된 배경에는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의 안목이 있었다. 뉴욕의 전설적인 갤러리스트다. 일찍이 워홀의 재능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렸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 잭슨 폴록 등도 그를 만나 큰 관심을 받았다.

피카소를 대중에 소개한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의 견식도 못지않았다. 탁월한 기획력으로 르누아르, 마티스 등을 발굴했다. 소개하는 방식은 전시회에 머물지 않았다. 판화 작품을 모아 작품집을 만들었고, 전기·자서전 등 책도 출간했다.

작가를 발굴하고 대중에 소개하는 갤러리스트의 역할은 가수를 양성하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많이 닮았다. 오디션, 길거리 캐스팅 등을 통해 발굴된 연습생은 일정기간 지원을 받으며 기량을 연마한다. 데뷔 뒤 발생되는 수익은 일정 비율로 분배된다. 그간 투입된 제작비, 홍보비 등을 충당하는 방식이다. 갤러리가 작가에게 지원하는 시스템과 거의 일치한다.

높아진 K팝의 위상 못지않게 K아트를 향한 세계 시장의 관심도 뜨겁다.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는 아시아 첫 개최지로 홍콩이나 도쿄가 아닌 한국을 선택했다. 지난해 국내 갤러리와 경매회사를 포함한 미술품 거래 총액은 약 9223억 원. 전년(3291억 원)보다 세 배가량 성장했다. 미술품을 투자처로 보는 아트 테크가 대중화되고 MZ세대로 불리는 2030 구매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블록체인 기반 대체 불가능 토큰(NFT) 투자, 조각 투자 등 다양한 상품이 출시됐다.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는 미술 시장 출현에 의해 예술품은 더는 미적인 질 혹은 원작자의 예술적 등급에 따라 평가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오히려 그때그때 경기에 따른 유통 가치에 의해 평가된다고 주장했다. 그간 미술시장은 갤러리, 경매,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형성돼왔다. 이 시스템은 여전히 공고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오프라인 전시가 주춤하면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컬렉터가 갤러리 전시를 통해 작가를 만나던 시스템에서 중간 역할이 옅어졌다. 갤러리는 발 빠르게 온라인 전시를 마련했지만 현실 공간이 주는 권위와 생동감까지 옮기지 못했다. 젊은 구매자들은 작품을 만나는 공간이 ‘꼭 갤러리여야 할까’라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근마켓에 백남준 작가의 설치작품 ‘문학은 책이 아니다(Literature is not Book)’를 9억 원에 올린 갤러리스트는 작가와 수집가가 바로 만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가장 이용자가 많은 서비스에 주목했다. 만약 이곳에서 판매가 된다면 시장에서 갤러리가 갖는 역할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아놀드 하우저는 예술품의 가치결정은 주로 대상의 희귀성 여부로 결정되며, 희귀성은 유행과 상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유행을 이끄는 MZ세대의 재미와 취향, 그리고 직관이 미술 시장의 판로를 어떤 방식으로 끌고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편집자주예잇수다(藝It수다)는 예술에 대한 수다의 줄임말로 음악·미술·공연 등 예술 전반의 이슈와 트렌드를 주제로 한 칼럼입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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