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곤기자
자식과 같은 반려견 포메리안 '테오' 생전 모습. 사진=테오 보호자 제공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반려동물을 둘러싼 크고 작은 의료 분쟁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유명 '치과' 동물병원에서 반려견이 검사 도중 갑자기 사망한 사건으로 온라인이 시끌벅적하다.
보호자는 이 병원이 간판만 교체하고 강아지 이빨 치료 등 특화 진료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며, 자신과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주장하며, 사건 공론화에 나섰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이 기르던 반려견이 한 동물병원 검진 과정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사고를 겪었다. A씨가 기르던 반려견은 만 9살된 포메라니안 '테오'다.
사고는 지난달 '치과 전문'으로 유명한 서울의 B동물병원에서 발생했다. 해당 병원은 '스타 강아지 진료', '특화 전문병원'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A씨측 주장에 따르면 '테오'는 치아 건강 검진 과정에서 마취 직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A씨에 따르면 테오는 노령견이 되면서 이곳저곳 아픈 곳이 생겨 치과 검진을 더 늦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하루 2마리만 예약을 받고 '반려동물 치과 특화 진료'를 한다는 B병원에 진료 상담을 받았다.
진료·수술비 등 결코 적은 비용은 아니지만 A씨는 그만큼 반려견을 세밀하게 봐주리라 생각했다. 이후 A 씨는 지난달 18일 테오를 데리고 B동물병원을 찾았다. 평소 테오의 몸무게가 1.4㎏로 덩치도 작아, 마취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반려견들이 흔하게 받는 슬개골 수술조차 테오에게는 시키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A 씨는 치과 진료 안내서를 보면서 검진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설명을 3분 동안 들었다고 한다. 병원 측은 A씨에게 혈액·흉부 방사선 검사를 한 뒤 30분 이내로 수액을 맞고 수면 유도를 통해 마취한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호흡 마취 전 반려견의 몸속에 프로포폴 약물을 주입해 수면 유도를 한다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언급도 없었다. 안내서에는 '원치 않는 부작용, 후유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설명만 간략히 적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진료 상담을 하면서 원장에게 마취 위험성을 거듭 물었지만, 원장은 "혈액검사 소견 결과 건강하고 문제없다"면서 "안전한 호흡 마취이니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테오는 프로포폴을 주입한 후 불과 30여초 만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A씨는 눈앞에서 죽은 테오를 보고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테오의 치과 진료 안내문 / 사진=테오 보호자 제공
◆ 동물병원 업계 "프로포폴을 투약해 검진을 강행한 것은 의문"
A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해당 사건에 대한 글을 올리며 사건이 공론화돼 여론이 들끓자 그제야 병원 측은 장문의 사과문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후 A씨는 동물병원 3곳과 서울 소재 수의학과 교수 2명에게 테오 진료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
공통된 의견으로 만 9세, 1.4㎏의 몸집, 초소형 단두종견인 테오에게 프로포폴을 주입한 것이 무호흡 사망의 위험이 있는 진료방식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또 다른 서울 모 동물병원의 C원장은 "테오의 혈액검사지를 봤을 때 피검사에서 콩팥 건강을 보여주는 'BUN 수치'가 비이상적으로 높았다"면서 "콩팥 신부전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상황에서 프로포폴을 투약해 검진을 강행한 것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테오를 담당한 원장은 한 언론을 통해 "마취 전 프로포폴을 주입하고 30초 만에 호흡 상태가 불안정해졌다”고 인정했다. 이어 “프로포폴 투여가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이 됐는지, 약물로 인해 기존 질병이 촉발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취 과정에서 테오가 죽었다는 과실은 인정한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특히 약물 사용 미고지에 관해 원장은 "호흡 마취 전 수면 유도 과정에서 프로포폴을 쓴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제 불찰"이라고도 했다. 제대로 된 사과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보상 얘기를 먼저 꺼내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 동물단체 "책임소재 명확하게 가릴 수 있는 제도·규정 필요"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진료 기록 등 각종 의료 행위에 대한 기록이 남지만, 반려동물 같은 경우에는 그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반려동물이 의료 수술을 받다가 장애가 남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면, 그에 대한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잘못된 의료행위에 대해 규제할 방법이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너무 없다. 의료 과실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가릴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려동물은 지금도 계속해서 늘고 있는 가족이다. 그런 가족이 치료 중 숨졌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기가 막히나'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결국 의료 사고나 의료 행위의 어떤 과실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의료 행위에 대한 모든 부분을 제도적으로 투명하게 책임소재를 가릴 수 있도록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모든 동물병원은 수술을 비롯한 중대 진료에 앞서 동물 보호자에게 진단명은 물론, 진료의 필요성과 방법, 예상 후유증 또는 부작용 등을 말로 설명해야 한다. 동물 보호자는 수의사로부터 설명을 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서명을 하고, 또한 설명은 구두로 하고 동물 소유자의 동의를 받은 후 동의서는 1년간 보존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최초 과태료 30만원, 2차 위반 시 60만원, 3차 위반 시 90만원이 부과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보호자들이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