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부애리기자
# 서울에 거주하는 박인자(64·여·가명)씨는 돌려 막던 부채 2000만원을 감당할 수 없게되면서 올해 초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젊은 시절부터 월셋방을 전전하며 근근히 살아왔는데, 최근엔 건강이 나빠져 일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 거동이 불편해진 노부모까지 봉양하게 되면서 생활고가 더 극심해진 까닭이다.
# 수도권 소재 중견기업에서 20여년을 근무하다 퇴직한 김인환씨(62·가명)는 4년 전 안정된 노후를 위해 식당을 개업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경험도 부족했거니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까지 겹치면서다. 식당을 접고 다행히 재취업에 성공하긴 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다. 살고 있는 집까지 처분했음에도 남은 부채는 1억원을 넘는다.
'빚더미 황혼'의 배경엔 국내 60세 이상 고령층의 부실한 주머니 사정이 있다. 젊은 시절엔 자녀 및 부모세대 부양으로 노후 대비에 적극적이지 못했고,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편중돼 있어 처분가능한 소득 자체가 부족해 지고 있는 데 따른 현상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21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국내 60세 이상 가구의 평균 부채 보유액은 지난해 1분기 기준 5703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8% 증가한 수치다.
60세 이상 고령층의 절대적인 부채 규모는 20대를 제외한 타 연령대에 비해 낮은 편이나, 증가율에선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고령층의 부채 증가율은 전 연령대 평균(6.6%)을 상회할 뿐더러, 결혼·출산·육아 및 투자 등으로 대출 수요가 많은 30대(11.0%)를 제외하면 가장 높다.
이처럼 부채가 늘어나는 이유론 근로소득의 감소, 이에 따른 처분가능소득의 감소가 꼽힌다. 같은 조사에서 가구주 연령대가 60대인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지난 2020년 기준 3660만원으로, 사회 초년생 세대인 20대(3189만원)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파산 가구의 사례를 보면 실질적 적자가구인 소득 1분위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1분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노령층·단독가구"라며 "무리한 사업 등에 따른 어려움 보단 생활고에 밀려 비교적 소액인 1000만~2000만원의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러다 보니 고령층은 소득증대를 위해 빚을 내 투자하거나 자영업에 뛰어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193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9.6%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자영업자 수가 1.9% 감소한 것과도 대비된다.
특히나 60세 이상 자영업자의 대출규모는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20년 1분기 기준 60세 이상 개인사업자 대출은 전년 대비 17.9% 증가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30~50대 자영업자 대출 증가율(9.4%)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수치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단 점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815만여명이던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불과 4년 뒤인 오는 2024년엔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고령층은 지난해 1분기 기준 보유 자산의 82.2%를 부동산 등 실물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반면, 연간 처분가능소득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수준이어서 우리 경제 및 금융 부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60세 이상 고령층은 지난해 3분기 기준 평균소비성향(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63.6%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고,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채무상환부담이 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70%를 초과하는 차주가 해당 연령대 전체 부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금리 상승시 고령층 중에서도 다중채무자면서도 신용이 낮거나 소득이 적은 취약차주의 이자부담이 커질 것이고, 연체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향후 주택가격 변동이 고령층의 가계자산 및 부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김지섭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부동산 시장 침체가 올 경우 자산이라곤 집 밖에 없는 고령층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클 수 있고, 이것이 전체 자산 및 금융시장의 안정성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