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송현도인턴기자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송현도 인턴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6월 7일 시작돼 14일까지 8일 간 진행되고 끝났다. 정부와 화물연대는 5차 교섭 끝에 핵심 쟁점이던 '안전운임제' 연장을 결정하면서 합의에 성공했다. 그러나 파업이 진행된 8일 동안 국내 물류망이 마비되면서 시멘트, 철강 등 산업계에 약 2조원의 피해액을 남겼다. 파업을 끝났지만 앞으로 안전운임제 확대·연장 기간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갈등의 불씨가 재점화할 수 있다. 제조업의 심각한 위기로 이어질 뻔했던 이번 파업의 원인 및 경과, 파업이 남긴 상흔과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정리해 봤다.
◆ 총파업의 불씨 '안전운임제'란?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결의한 가장 큰 이유는 안전운임제다. 화물연대는 지난달 28일 서울시 숭례문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및 전 차종·품목으로 확대 ▲운송료 인상 ▲지입제 폐지 및 화물운송산업 구조 개혁 등 요구에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주가 받는 최소한의 운임(운송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화물운송업계의 '최저임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제도는 낮은 운임으로 인해 화물차주들이 과로·과적·과속 운행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020년에 도입됐다.
문제는 당시 도입된 안전운임제가 3년이란 한시적 기한(일몰)을 둔 점이다. 올해 12월31일 종료될 예정이다. 화물연대는 현재의 고유가 상황에 안전운임제까지 폐지되면 화물노동자 생계에 큰 피해가 갈 것을 우려했고, 이에 정부에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왜 파업을 막지 못했나
정부는 지난달 30일 '안전운임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에 착수했다. 화물연대 총파업 예고일인 지난 7일로부터 5일 전이던 2일엔 국토교통부가 화물연대와 1차 교섭을 시도했다. 그러나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두고 양 측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결국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채 교섭은 결렬됐고 화물연대는 예정대로 지난 7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화물차가 멈췄다.. 대한민국 산업도 멈췄다
이번 파업이 남긴 피해는 컸다. 대표적으로 시멘트 출하에 차질이 당장 발생했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파업 첫날부터 3일간 시멘트 출하량은 평균 1만6000톤을 기록했다. 파업 전인 약 18만톤 대비 10% 수준이다. 시멘트 업계의 누적 손실액은 458억원으로 추산된다.
시멘트 출하 중단은 도미노처럼 건설현장을 덮쳤다. 수도권 145개 레미콘 제조 공장으로 구성된 서울경인레미콘공업협동조합사 95%가 지난 9일 운영을 멈추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울산 및 온산 석유화학단지 내 공장들이 생산하는 폴리프로필렌(PP) 등 제품 출하와 수급이 중단되기도 했으며, 주류 기업의 소주 출고량이 줄어 일부 편의점이 주류 판매를 제한하기도 했다.
1일 평균 1만1000대가량의 납품 차량을 통해 완성차 부품을 조달하고 있는 현대차도 집단 운송 거부에 영향을 받아 제조업 가동률이 크게 떨어졌다. 이 외에도 항만, 내륙물류 등 다양한 운송 사업이 파업 기간 중 차질을 빚었다. 한국무역협회, 경영자총협회, 한국시멘트협회 등 국내 6개 단체가 추산한 피해액수를 합하면, 이번 8일간의 총파업으로 인한 산업계 피해액은 약 2조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vs 화물연대, 결국 누가 양보했나
파업이 시작된 이후 국토부는 끊임없이 화물연대와 교섭을 시도했다. 절정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연달아 진행된 2, 3, 4차 교섭이었다. 특히 주말에 이뤄진 4차 교섭 당시에는 10시간 가까이 테이블에 앉아 협상을 진행했지만 끝내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화물연대 측이 "국민의힘이 합의를 번복했다"라고 주장하고 국민의힘은 즉각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등 신경전도 벌어졌다.
14일 5차 협상에서 결국 정부와 화물연대는 극적 합의에 성공했다. 양 측은 각각 합의문을 내 "안전운임제의 지속 추진에 대해 합의했다"(화물연대), "현재 운영 중인 안전운임제 연장 등 지속 추진한다"(국토부)라고 밝혔다. 올해 말 종료 예정이었던 안전운임제의 기한 연장을 사실상 확정한 것이다. 이후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전국 16개 지역본부별로 각각 현장에 복귀하기로 했다.
◆꺼지지 않은 불씨…'진정한 타협' 숙제로 남아
총파업은 일단락됐으나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갈등은 완전히 봉합되지 않았다. 14일 국토부와 화물연대가 낸 합의안부터 해석이 갈릴 수 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의 지속 추진에 합의했다"라고 밝혔으나, 국토부는 "안전운임제 연장 등 지속 추진한다"라고 했다. 안전운임제 적용 기간을 단순히 연장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일몰제 폐지와 안전운임제의 영구 법제화를 요구하는 화물연대 요구과는 거리가 있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여부를 최종 결정할 국회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국토부는 지난 3년간 안전운임제 시행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고,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우선 여당인 국민의힘은 일몰제 폐지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3년간 안전운임제 경과에 대해선, 코로나19 및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가 변동이 심해 정확한 평가가 어려웠다"라며 "일몰법 기간에 (안전운임제의) 성과를 완벽히 측정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일몰법 연장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한다"라고 밝혔다.
같은 당 권성동 원내대표는 "언론 보도를 보니 정부 입장과 화물연대 발표에 차이가 있었다"라며 "그 경위를 파악하고 안전운임제 연장 여부는 내부 논의를 거쳐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내놨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일몰제 폐지(영구 법제화)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화물연대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전차종 전품목 확대를 위한 국회 입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도 "(시간이 지나면) 화물트럭을 모는 차주들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건가, 일몰제 폐지가 답"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봉주 화물연대 본부장은 이날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국회에서 일몰제 폐지 법안이 통과되고 제도 범위가 전차종·전품목 모든 화물노동자로 확대될 때까지 현장에서 또 국회에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화물연대의 요구사항이 일몰제 폐지임을 확실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송현도 인턴기자 doson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