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윤기자
유영국 화백. 사진제공 = 국제갤러리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산을 그리다 보면 그 속에 굽이굽이 길이 있고, 그것이 인생인 것 같아서 내 그림의 산 속에는 여러 모양의 인생이 숨어 있다."
한국 추상화 선구자인 작가 유영국(1916~2002)의 작품세계 전반을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는 유영국의 20주기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를 8월 2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유영국의 주요 작품을 망라했다. 다채로운 색채구성과 작가의 조형실험 궤적을 중심으로 대표작 68점과 드로잉 21점 등을 선보인다.
전시는 산과 자연을 모티브로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 구도로 절제된 조형미학의 정수를 선보인 작품의 예술사적 의미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연대기적 구성이 아닌 작가의 일생과 작품에 표현된 색채의 변주를 중심으로 구성한 점이 눈에 띤다.
유영국_Work_1967. 사진제공 = 국제갤러리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문화학원 유학을 통해 추상미술에 입문한 유영국은 태평양전쟁이 절정이던 1943년 귀국해 작품활동과 선주이자 양조장 경영인으로 생업을 함께 이어갔다.
1964년, 마흔여덟에야 비로소 전업작가로 나선 유영국은 스스로가 '잃어버린 시간'이라 명명한 20년을 만회하듯 압도적 에너지와 대담한 구상으로 풍경과 마음의 심연을 심도깊게 표현하는데 몰두했다. 이 시기 발표한 산 모티브의 대형 추상작업들은 미묘한 색채 변형과 그 속에 들끓는 긴장감, 이를 통한 작품의 깊이감을 통해 추상 미학의 절정을 구현한다.
작가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점·선·면·형·색의 기본 조형 요소에 대한 천착을 작품 속 색채와 구도의 완급으로 승화시켰다. 자연의 원형적 색감을 심상으로 환기시키는 추상 조형을 중심으로 작가는 원초적이며 서사적이고, 균형 있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중후기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유영국_Work_1969. 사진제공 = 국제갤러리
이번 전시는 작가의 1942년 경주 사진 연작과 다양한 드로잉과 초기 활동 아카이브 사료도 공개 돼 유영국의 작품 구상 과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끊임없이 작가가 구축한 조형 언어와 다양한 시도를 담은 밑그림, 그리고 이를 토대로 구축된 자연 추상의 세계관을 다양한 화폭에 담아낸 결과물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유영국은 1970년대 후반, 심장박동기를 달고 죽음의 문턱에서 삶으로의 회귀를 반복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작가의 오랜 투병 생활 속 탄생된 서정적인 회화 작품들은 완벽한 평행 상태를 은유하듯 따스한 생의 빛을 머금고 관객에게 색채의 잔상처럼 이를 투영한다.
한편, 전시에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RM은 평소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대구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하며 애정을 드러내왔다. 작가의 '산' 추상화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용우 홍콩 중문대 문화역사학과 교수는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일생과 색채 변주에 전시 구성의 초점을 맞췄다"며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초록색과 군청색, 보라색과 검은색이 부각된 작가의 최절정기 대작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