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반도체 수급난으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를 확보하려고 세탁기를 사서 그 속에 있는 부품을 뜯어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ASML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가 심각성을 토로했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베닝크 CEO는 이날 1분기 실적 발표 중 주요 산업의 한 대기업이 지난주 반도체 수급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렇게까지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기업명을 밝히지 않았으나 일부 분야에서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발언으로, 당분간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말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말했다.
베닝크 CEO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수요는 정말 많은 산업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 분야가 매우 넓다"면서 "우리가 그 수요의 폭을 너무 적게 잡았다. (반도체 부족 현상이)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서스퀘한나 파이낸셜이 조사한 지난달 반도체 리드타임(주문에서 최종 납품까지의 시간)은 26.6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중국의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치와 일본 지진 등의 여파가 반도체 공급에 영향을 주면서 수급난을 한층 악화시킨 탓이다.
베닝크 CEO가 수장으로 있는 ASML은 반도체 첨단 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급하는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로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앞다퉈 장비 확보를 위해 러브콜을 넣는 '슈퍼을' 기업이다. 반도체 수급 상황에 따라 제조장비의 수요도 움직이는 만큼 그의 이번 발언은 당분간 수급난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1년 넘게 반도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최근 테슬라와 폭스바겐, 도요타자동차 등이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생산에 차질을 겪고 있다고 발표한 내용을 전했다. 코로나19 당시 펜트업(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현상) 현상이 있었던 소비자 전자제품 수요가 약화됐지만 그럼에도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이나 장비 부족 사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