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자신의 촉법소년 지위를 악용해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다가,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넘어선 뒤에야 검거된 중학생 사건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예상된다. 최근 미성년자의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흉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촉법소년 제도에 대한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점차 늘고 있다.
지난 18일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중학생 A군(14) 등 2명은 특수절도 등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5일 오전 4시분께 광주 서구 금호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문이 열린 승합차를 훔쳐 무면허 운전을 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A군은 아파트 단지에 세워진 차량 1대를 들이받았고,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차를 두고 달아난 혐의도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과거에도 약 40차례 차량 내 금품을 훔치거나, 무면허로 차를 몰고 다닌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붙잡힐 때마다 번번이 풀려났고, 이후로도 별다른 반성 없이 유사한 범행을 이어나갔다.
A군 등은 올해 만 14세를 넘기면서 형사 미성년자를 벗어났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수사할 방침이다.
촉법소년은 범법 행위를 한 10세 이상부터 14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뜻한다. 이들은 형사책임 능력이 없는 형사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도 감호위탁·사회봉사·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가장 무거운 처분인 '소년원 2년 이내 송치'가 내려져도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
문제는 최근 자신의 특별한 지위를 악용한 '지능적'인 소년범 사례가 잇따라 나온다는 데 있다.
지난 2월22일 'MBC' 보도에 따르면, 미성년자 B군(13)은 이달 초 한 무인 매장에 들어가 금품을 훔치는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촬영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B군은 인적이 없는 새벽을 틈타 매장 안으로 들어가,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가위로 결제기를 열어젖힌 뒤 현금을 챙겨 달아난다.
경찰 조사 결과, B군은 이같은 방식으로 약 11일에 걸쳐 20여회의 절도 행각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B군이 훔친 금품의 가치는 약 700만원에 육박했다. 경찰은 두 차례 B군을 붙잡은 바 있으나, 당시 B군은 "나는 만 14세가 되지 않았으니 촉법소년이다. 처벌할 수 있겠냐"라며 되려 욕설·막말 등을 퍼부은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소년범이 촉법소년 제도를 악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청소년의 계도를 목적으로 하는 소년법이 오히려 합당한 처벌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달 24일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촉법소년 소년부송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살인, 강도, 강간·추행, 방화, 절도 등 강력범죄를 저질러 소년부로 송치된 촉법소년은 3만5390명으로 집계됐다.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촉법소년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7년 6286명에서 지난해에는 8474명으로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촉법소년 기한 만료까지 한 해를 남겨둔 만 13세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총 2만2202명의 만 13세 촉법소년이 강력범죄를 저질러, 전체 가운데 62.7%를 차지했다.
이를 두고 김 의원은 "최근 촉법소년들의 범죄가 잔인, 흉포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하향하고, 보호처분만으로 교화가 어려운 촉법소년의 경우 예외적으로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방안이 실제 소년범죄 억제로 이어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청소년 범죄를 혹독하게 대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으며, 국제 사회의 아동 인권 협약에도 위배된다고 우려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지난 2018년 성명서를 내고 "미성년자 강력범을 성인과 동일하게 처벌했던 미국, 소년 형사처벌 연령을 16세에서 14세로 낮춘 일본 등 해외에선 형사처벌 확대 강화를 통해 소년범죄 감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라며 "엄벌주의 정책은 소년사범에 효과적이고 적절한 대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세계 196개국이 가입한 유엔(UN) 아동권리협약 또한 회원국에 형사미성년자 최대 연령을 만 14세 수준에 맞출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난 1989년 UN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소년 범죄자 보호에 관한 조항'을 보면, 아동을 체포하거나 가두는 일은 최후의 방법으로 선택해야 하며, 소년범은 성인 범죄자와 함께 지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는 소년법 개정은 변화한 국내 사회 환경, 현대 청소년의 신체적·정신적 조건 등을 모두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국내 형사 미성년자 기준은 1950년대에 제정된 것으로, 70년 전에 만들어진 기준인 만큼 급변한 한국 사회의 현재 사회적 상황에 반드시 맞다고 볼 수는 없다"라며 "변화한 청소년의 발달 수준, 범죄의 흉포화 여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의 소년법만으로 소년범을 계도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