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기자
이관주기자
[대담=아시아경제 이경호 사회부장, 정리=이관주 기자]"상용화돼있는 4세대 이동통신(LTE)망을 사용한다면 기반 구축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로교통공단은 자율주행 시대를 준비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 운전면허관리와 교통안전 교육·홍보·연구 등 교통사고 감소·예방 활동은 물론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상용화에 대비한 법제화,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다양한 연구와 사업을 전개 중이다. 지난 22일 대구에서 연 ‘디지털 교통신호정보 활용 합동 시연회’는 그간 축적된 공단의 기술력을 입증하는 자리가 됐다. 이주민 도로교통공단 이사장도 시연 차량에 직접 탑승했다. 시연회에서는 LTE망을 이용해 디지털 교통신호정보를 실시간으로 자율주행차에 전달, 카메라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비보호 좌회전·보행신호 등 정보를 바탕으로 안전한 주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타공인 교통 전문가인 이 이사장에게도 자율주행은 새로운 도전이다. 단순히 기술만 개발된다고 자율주행의 시대가 뚝딱 오는 것은 아니다. 그에 걸맞은 면허체계, 교통사고 책임, 도로 환경 등 각종 법·제도·인프라를 구축해야만 안전한 자율주행 상용화 시대를 맞을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자율주행차가 도로교통법상 안전운전 규정을 준수하는지를 평가·검증할 수 있는 검증단지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급변한 교통 환경에 대응하는 일도 공단의 주요 임무다. 비대면 시대의 도래로 배달 수요가 급증하며 이륜차·택배 사고 등이 급증하고 있다. 공단은 이달부터 서울시·배달업체·노동계 등과 협력해 홍보활동은 물론 주말 빈 면허시험장을 이용한 실습교육까지 펼치는 등 안전 취약지대 해소를 위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 이 이사장은 "법제화가 안 돼있어 교육을 강제로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고 있다"면서 "운전자들에 대한 교육과 홍보는 물론 단속·시설 등이 모두 어우러져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강원 원주시 도로교통공단 본사에서 이 이사장을 만나 국내 교통 환경의 변화와 전망, 교통안전 확보를 위한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자율주행 연구는 어디까지 왔나.
▲크게 세 가지 파트다. 먼저 자율주행이 됐을 때 면허를 자동차에 줄 것인가, 사람에 줄 것인가, 자동차 회사에 줄 것인가 등의 문제가 있을 텐데 법적인 근거를 미리 연구해야 한다. 다음은 윤리적 문제다. 자율주행차 앞에 갑자기 여러 사람이나 물체가 나타났을 때 제동이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술적인 면도 연구가 필요하다. 실제 도로에서 자율주행차가 일반차량과 섞여갈 때 복잡한 환경 속에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느냐, 그 인프라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연구해야 한다. 공단은 앞서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대비해 ‘한국형 윤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자율주행차의 운전면허체계와 안전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기 위해 안전운전능력을 검증하는 시범사업도 펼치고 있다.
-배달 서비스 이용이 늘면서 이륜차 배달종사자의 교통사고가 늘고 있다.
▲배달종사자와 이륜차 운전자 대상 교육과 홍보를 확대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한국안전돌봄서비스협회와 함께 서울시 배달종사자 안전교육 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돼 11월 한 달간 주말마다 최대 500명의 서울지역 배달종사자에게 이륜차 안전교육을 진행했다. 또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와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청년들, 외식업체 치킨플러스와 이륜차 배달원의 안전한 교통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택배 종사자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CJ대한통운과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교육·홍보와 함께 단속과 시설 등이 다 같이 어우러져야 한다. 현재 경찰청과 함께 이륜차 뒷번호 인식 CCTV를 시범운영 중인데, 내년에는 설치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전을 위해 더 양보하는 운전습관, 교통문화를 가질 필요가 있다.
-‘민식이법’ ‘안전속도 5030’에 대한 회의론은 여전하다.
▲시간이 지나며 많이 정착돼가는 것 같다. 두 정책 모두 사람의 신체·생명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다소 속도가 늦어져서 불편하다 이런 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모임 같은 데에서 동시에 운전하면 저는 가장 나중에 도착한다.(웃음) 그래도 그 덕분에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가 부상으로, 크게 다칠 분이 덜 다치게 될 수 있다. 실제 안전속도 5030 적용 대상 지역 내 보행자 사망자가 지난해 167명에서 올해 139명으로 16.7% 감소했다. 적용되지 않은 지역의 감소 폭보다 4.5배 큰 수치다. 이번 정책을 계기로 조금 늦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문화가 정착되길 희망한다. 다만 굳이 시속 30㎞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지역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은 데이터가 쌓이면서 조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모든 국민들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교통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공단의 과제이자 목표다.
-운전면허시험이 쉽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가 운전면허를 비교적 쉽게 취득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어렵게 해서 운전으로 생업하고 이동하는 등의 부분을 제약할 수 있다. 지금 제도를 바꾸는 것은 공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정책당국과 국민적 합의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기준에서 양질의 운전자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과 시험을 업그레이드하고, 장내기능·코스시험을 센서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시험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도로 주행의 지역별 편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면허시험장이 보통 4개 코스로 운영되는데 합격률이 똑같지는 않다. 차이가 나면 안 되니 매달 점검해 편차를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지난 2월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취임 당시 공단을 ‘명실상부한 교통안전 분야 최고의 전문기관’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올해 데이터 융·복합 중심 ‘국가 교통안전 빅데이터 허브’ 구축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교통안전 빅데이터는 사고 감소 방안과 인프라 개발, 교통안전정책 발굴 등 도로교통 분야의 전략적 데이터 자산으로 활용될 것이다. 또 6월에는 빅데이터, AI, IT서비스, 자율주행·드론, 사물인터넷(IoT) 기반 스마트 교통인프라 등 5개 분야 관련 전문가 33명을 ‘스마트 미래교통 자문단’으로 위촉했다. 급변하는 신기술에 대한 기술 자문은 물론 직원 역량 교육, 대국민 서비스 고도화 등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예방형 교통안전정책을 개발할 기반을 다졌다.
-공단의 미래는.
▲미래 교통환경 변화에 대응하고자 향후 업무의 중심을 운전자에서 시스템·인프라로 전환해나가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정책을 선도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고, 내부적으로는 윤리와 청렴을 핵심 가치로 두고 운영할 방침이다. 내부 소통을 강화하고 충분한 동기 부여와 보상을 통해 직원들이 신뢰와 자부심을 갖고 신명나게 일하는 건강한 조직문화도 만들어나가겠다. 마지막으로 국제 교류·협력을 강화해 교통안전 분야에서도 ‘한류 붐’을 일으키고자 한다. 선진기술과 정책은 연구·도입하고, 교통안전 문화와 인프라가 낙후된 국가에는 그간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 교통안전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겠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효과로도 연결될 것이다.
<이주민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약력>
▲1962년 경기 양평 출생 ▲경찰대학 법학과 1기 ▲강원 고성경찰서장 ▲뉴욕 총영사관 경찰주재관 ▲서울 영등포경찰서장 ▲경찰청 외사정보과장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장 ▲경찰청 정보심의관 ▲울산경찰청장 ▲경찰청 외사국장 ▲인천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 ▲도로교통공단 이사장(2021년 2월~)
대담=이경호 사회부장 gungho@asiae.co.kr정리=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