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차세대 반도체인 뉴로모픽 소자, 로직 소자 개발의 핵심 기술인 스커미온 기반 전자 소자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엄청난 전기를 쓰면서 열도 많이 나는 기존 반도체와 달리 대용량을 저전력으로 처리할 수 있어 획기적이라는 평가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은 양자기술연구소 양자스핀팀이 스커미온 기반 전자소자를 구현할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5일 밝혔다.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등은 ‘전기 먹는 하마’라고도 불릴 만큼 전력 소모가 크다. 2016년 알파고가 바둑 한판을 둘 때 소모한 전력은 약 1 메가와트로, 일반 가정집 100가구가 하루에 사용하는 전력사용량과 비슷하다. 이에 대용량 데이터를 저전력으로 처리하는 초저전력 전자소자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스커미온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배열된 스핀 구조체로, 수 나노미터까지 크기를 줄일 수 있으며 매우 작은 전력으로도 이동할 수 있어 초저전력 소자의 대표 주자로 꼽히고 있다. 스커미온을 이용한 전자소자는 자성의 N극, S극을 이용해 1이나 0을 기록했던 전자소자에 비해 100분의 1 수준의 전력을 소비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스커미온을 전자소자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단일 소자 내에서 개별 스커미온을 제어하는 생성·삭제·이동·검출의 4가지 기술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연구자들은 이 4가지 기술의 일부 조합을 각각 실험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생성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한 이유로 4가지를 한 번에 실험으로 증명한 적은 없었다.
현재까지 스커미온을 응용하는 전자소자 연구는 대부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진행됐다. 스커미온 기반의 전자소자를 상용화하려면 실제 실험으로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응용 가능성이 큰 소자 개발에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평면 상태의 2차원에 국한돼 광·전류·자기장·전기장 등 외부의 강한 자극으로 스커미온을 생성 및 삭제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3차원 수직 전극 구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스커미온의 생성 및 삭제 방식을 실험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산화층 내부에 3차원 수직 전극 역할을 하는 필라멘트가 형성되는 것을 이용해 자성체의 특정 위치에 전류를 주입했고, 이때 스커미온이 쉽게 생성 및 삭제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기존의 스커미온 이동 기술과 접합시켜 하나의 소자에서 스커미온의 자유로운 생성·삭제·이동 기술을 동시에 구현했다.
이번 기술은 국내 대기업에서 개발하고 있는 ‘M램’ 기술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M램은 자성 반도체로 불리며, 자기장의 밀고 당기는 현상을 활용해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한다. 이론적으로 D램보다 집적도가 1000배 이상 뛰어난 반도체 제조가 가능하다. 201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앨버트 퍼트 박사가 이론적으로 제시한 스커미온 소자(Skyrmion racetrack memory)를 세계 최초로 실험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황찬용 책임연구원은 “이번 성과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스커미온 개수 제어를 활용한 시냅스 소자 등의 응용연구와 지금까지 거의 실험이 불가능했던 양자 스커미온 분야 연구를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IF: 30.849)에 지난달 27일 온라인 게재됐다.
다음은 주요 용어 설명.
▲스커미온
스커미온은 축(Spindle)이 소용돌이 모양의 나선형으로 배열된 입자 형태의 독특한 스핀 구조체다. 스커미온은 외부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형태나 구조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어 수 나노미터 수준의 작은 크기로 생성할 수 있으며, 전기적으로 스커미온의 개수를 조절할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은 메모리, 논리 소자, 통신 소자 등 차세대 전자소자에 적용하기에 매우 유용하다. 스커미온을 메모리 소자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보 저장의 기본단위(bit)인 각각의 스커미온을 원하는 위치에 생성하고 소멸시킬 수 있어야 하며, 생성된 스커미온을 매우 높은 효율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뉴로모픽(Neuromorphic)
뉴로모픽(Neuromorphic)은 인간의 뇌를 모방해 만든 반도체 칩 같은 하드웨어를 말한다. 뇌의 신경세포 간 신호 전달 방식을 모방해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을 쓴다. 소비 에너지가 20와트(W) 밖에 되지 않아 인공지능(AI) 기능을 초저전력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