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천천히 죽겠죠' 10대 소녀의 절규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정권 재장악
20여년 동안 증진된 여성 인권 후퇴 우려

신원을 알 수 없는 아프간 10대 소녀의 영상 / 사진=트위터 캡처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요. 우리는 천천히 죽어가겠죠."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함락하고 정권을 다시 장악한 지난 15일(현지시간), 트위터에는 한 아프간 소녀의 비통한 심경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이 소녀는 탈레반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며 "아프가니스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절망의 눈물을 흘렸다.

영상은 이날 이란 출신 인권운동가 겸 언론인 마시 알리네자드의 계정을 통해 공유됐다. 알리네자드는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10대 소녀의 영상에 대해 "탈레반이 진격해 오면서 미래가 산산조각나자 절망에 빠진 아프간 소녀의 눈물이다"라며 "역사는 이것을 기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상 속 소녀는 차량 좌석에 앉아 "아무도 우리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천천히 죽어갈 것" 등 고통스러운 심경을 호소한다. 그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내 눈물을 닦아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6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을 장악한 뒤 차에 탈레반 깃발을 달고 순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영상은 하루 동안 약 173만명이 조회하고, 2만명 이상이 공유했다. 영상을 공유한 이들 중에는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도 있었다.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소설 '연을 쫓는 아이'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가슴이 찢어진다. 아프간 여성과 소녀는 버려졌다"며 "그들의 꿈과 희망, 지난 20년동안 추구했던 권리는 뭐였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탈레반은 이날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로 입성했다. 탈레반 무장 대원 수십명은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탈레반기를 게양하고, 현지 방송에 "아프간에서의 전쟁은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아프가니스탄 함락 이후 카불에 있던 각국 대사관, 시민, 병사 등은 대피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 영국 등 국제 연합군은 C-17 수송기를 카불 국제 공항에 보내 철수 작전을 돕고 있다.

현지 아프간 시민들, 특히 여성들이 탈레반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들이 과거 인권을 침해하는 가혹한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현지 언어 중 하나인 파슈툰어로 '학생', '지식의 추구자'를 뜻하는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에 이슬람 전통 율법인 '샤리아'로 사회를 엄격하게 통제한 바 있다. 도둑질을 한 사람의 신체 부위를 절단하거나, 여성의 부르카 착용을 강제하고 교육·취업 기회를 박탈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한 상점에서 여성을 그린 벽화가 지워지고 있다. / 사진=트위터 캡처

탈레반이 물러난 지난 20여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은 크게 향상됐다. 영국 매체 BBC에 따르면, 지난 2003년 아프간의 여성 중학생 수는 전체의 3%에 불과했으나 2017년에는 39%로 크게 늘어났다. 탈레반이 정부를 구성했던 지난 1999년에는 여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또 성인 여성 중 5분의 1은 직장을 갖고 있다.

앞서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현지 매체들과 인터뷰에서 정권 이양 이후에도 여성의 교육, 취직 등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이미 '탈레반 눈치 보기'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상점 주인들이 길가에 그려진 여성의 벽화를 하얀 페인트로 덧칠해 지우는가 하면, 여성들이 부르카(신체의 모든 부위를 가리는 전통 복장)를 착용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현지 일부 남성들은 "오늘이 (여성이) 길거리에 나오는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며 비웃기도 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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