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산책] 말베르크 - 16년간 수집한 커피 그라인더 1600개의 합창 세월을 마신다

독일서 사업하던 이승재 관장
유럽 골동품 시장 돌며 수집
17세기 유럽서 동판으로 첫선
나무-황동-플라스틱 등 진화
1900년대 초 도자기 제품 유행
연인의 이름 새겨넣은 제품까지
커피 애호가 위한 사용법 강의도
말베르크=커피 그라인더 독일어

서울 중구 장충동 박물관 겸 카페 말베르크 입구.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원두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커피 원두를 분쇄하는 기계인 ‘커피 그라인더’에 대한 관심이 함께 높아지고 있다. 전문 커피숍은 물론 가정에 들여놓는 커피 그라인더는 생활 속에서 쉽게 찾아보는 소품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커피 그라인더는 로스팅(볶기) 과정을 거친 커피 원두를 갈아 고운 가루로 만들어내는 기계. 지난 17세기부터 유럽에서 제조돼 왔으며, 시대의 발전에 따라 무수한 변화를 거치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특히 그라인더는 내부에 적재된 분쇄용 기계 장치가 특성을 좌우하는데, 이 장치가 바로 코니컬 버(Conical Burr), 혹은 독일어로 말베르크라고 불린다.

그 용어를 딴 박물관을 찾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가깝다. 이승재 관장은 16년 가까이 커피 그라인더 수집에 열중하며 국내에서는 처음 박물관까지 차려 주목받는 인물이다.

‘말베르크(mahlwerk)’라는 팻말이 세워진 작은 2층짜리 건물은 박물관 겸 카페. 1층에는 상설전시실과 체험실이 있고, 2층에는 기획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 800개 넘는 커피 그라인더가 진열돼 있다.

말베르크에 진열된 커피 그라인더 제품 일부.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이 관장은 커피 그라인더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독일에 거주하며 바이오매스 물질 컨설팅 사업에 몸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커피 그라인더 수집이라는 취미를 갖게 됐다고 한다. 사실 커피 그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는 "어째서 커피가 세계를 대표하는 음료로 발달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래서 커피의 공정을 살펴보던 중 원두를 갈아 고운 입자로 만드는 커피 그라인더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관장은 독일의 벼룩시장에서 커피 그라인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독일인 그라인더 전문가의 소개로 거대한 그라인더 진열창을 방문했는데 그 매력을 떨치기 어려워 그라인더 수집에 빠져들게 됐다고 한다.

특히 커피 그라인더 안에 역동적인 역사와 무수한 이야기가 숨어 있어 수집의 의미가 남달랐다. 단순한 커피콩 분쇄기계가 아닌, "인간 기술 발전과 역사가 누적된 결과물"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계 소재의 변천사부터 흥미롭다. 17세기 최초의 커피 그라인더는 동판을 이용해 제작됐다. 그러나 금속 냄새가 원두에 스며들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점차 나무를 이용한 그라인더로 변화했다. 합금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에는 황동을 이용해 화려하게 장식한 그라인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그라인더가 나타나기도 한다. 상설전시실을 찾으면 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동선을 따라 제품들을 전시해놓고 있다.

19~20세기 당시 제작된 유럽제 커피 그라인더와 도자기 제품들.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커피 그라인더는 한 시대를 살던 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된 거울이기도 하다. 1900년대 초반에는 도자기를 씌운 그라인더가 유행을 끌었는데, 이는 가정집에 커피 그라인더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도자기 안에 원두를 저장해 두는 풍습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 결혼 예물로 교환되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골동품 그라인더 중에는 연인의 이름을 새겨 놓은 제품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장은 유럽 여러 국가의 골동품시장을 돌며 커피 그라인더를 수집했고, 현재는 1600개가 넘는 제품을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말베르크 박물관에 내놓은 것은 절반 정도다. 전시 제품 중에는 작고한 독일인 요크 프리드리히가 평생 모은 독일 레나츠사의 시리즈물 300점이 포함돼 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17세기 커피 그라인더 모습.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박물관은 지난해 문을 연 이후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커피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커피 그라인더를 구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관장이 직접 커피 그라인더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거나 올바른 커피 분쇄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체험실에서는 이용객들이 직접 커피를 구입해 다양한 그라인더를 직접 사용해보고 드립커피를 내릴 수도 있다.

이 관장은 박물관 규모를 좀 더 키웠으면 하는 꿈도 꾸고 있다. 서울 중구에 소재지를 둔 파라다이스에서 지역사회 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건물 터를 무상 제공하고, 중구청이 기존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새로 재탄생했기에 지금의 박물관에도 의미가 작지 않다. 하지만 그는 "가능하면 서울 시내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커피 박물관으로 확대 운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서울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은 처음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해진 것과 관련이 깊다. "과거 고종 황제가 서울에서 처음 커피를 시음하면서 한반도에 커피 문화가 들어왔다. 즉 서울이 사실상 한국 커피 문화의 시발점인 셈"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세계 커피 문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커피 그라인더 전문 박물관을 우리나라의 커피 도입 장소에 차리는 것은 의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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