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지난 8일(현지시간) 새벽 스위스 발레주에서 한 아마추어 천체 사진가가 촬영한 밤하늘. 스타링크 위성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 사진=유튜브 캡처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지난 8일(현지시간) 오전 3시27분. 일자로 나란히 배치된 빛덩어리들이 스위스 발레주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해당 영상을 촬영한 스위스 출신 아마추어 사진가 올리버 스테이저 씨는 "미국 기업가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에서 쏘아 올린 최신 스타링크 L9 위성 57개가 궤도에서 이동하는 모습"이라며 "인공위성이 줄지어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기차'같다"고 설명했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나도 어제 '스타링크 기차'를 봤다. 정말 아름다웠다", "위성이 저렇게 정확하게 움직이다니", "외계인 우주선 함대 같다" 등 신기함을 금치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전세계에 끊김 없는 위성 인터넷을 보급하기 위해 스페이스X에서 쏘아 올리고 있는 스타링크 위성이 누리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50~60개의 인공위성이 편대를 이뤄 움직이는 스타링크는 특유의 집단 비행 방식 덕분에 '스타링크 기차'라는 별명을 얻었다. 관측자들을 위해 기차가 지나가는 하늘 위치를 표기해 주는 웹사이트 서비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스타링크 같은 대규모 위성망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우주를 오염시키고 우주 산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공위성 수백개가 한 번에 지구 궤도에 들어서면, 궤도상 교통이 복잡해져 충돌 위험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후죽순 늘어나는 대규모 위성망에 대한 국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타링크는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전세계 위성 인터넷망 구축 프로젝트로, 오는 2020년대 중반까지 인공위성 1만2000개를 지구 궤도에 띄워 끊김 없는 1Gbps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위성 인터넷 서비스 자체는 '바이어샛', '휴즈넷' 등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기존 인터넷 위성 인터넷은 지상으로부터 3만5000㎞ 떨어진 지구 정지 궤도에 수 개의 대형 위성을 띄워 구축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지상과 위성 사이 거리가 너무 멀어 지연 시간이 발생하고, 위성 개수 자체도 적다보니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국가도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이스X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량 400kg의 작은 위성을 저궤도(지상으로부터 1100㎞ 떨어진 거리)에 띄워 '끊김없는 인터넷'을 실현한다. 또 하늘 전체에 1만2000개의 위성을 촘촘히 배치해 모든 대륙에서 스타링크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지난해 촬영된 '스타링크 기차' 현상. 저궤도로 방출된 위성군이 정렬한 뒤 지정된 위치로 나아가는 모습. /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이 때문에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위성을 로켓에 실어 한 번 발사할 때마다 '위성군' 형태로 쏘아 올린다. 즉 스페이스X가 제조하는 '팰컨9' 로켓 한 기에 최대 60개의 인공위성을 탑재한 뒤, 로켓이 저궤도에 이르면 이들을 한 번에 투하하는 방식이다.
궤도로 방출된 위성 60개는 위치 조정 시스템을 이용해 일자로 정렬한 후 지정된 위치로 이동하는데, 이같은 과정에서 이른바 '스타링크 기차' 현상이 나타난다.
스타링크 위성군을 탑재한 팰컨9 로켓은 18일까지 총 12회 발사됐다. 지구 궤도 상에 배치된 스타링크 위성 개수로는 655개에 이른다. 미국·독일·일본·스위스 등 여러 국가 밤하늘에서는 스타링크 기차가 이따금 포착되고 있으며, '헤븐즈 어보브(heavens-above)' 등 인공위성 위치 정보 웹사이트에서는 스타링크 기차의 경로와 위치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스타링크 같은 대규모 위성망 프로젝트가 천체 연구와 우주 산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별의 미약한 빛을 탐지해야 하는 천문학계에는 스타링크 기차가 밤하늘을 간섭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남방천문대가 지난 2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군집 위성의 반사광은 지상에 있는 광대역 탐사 망원경의 감지 능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또 군집위성 전파 전송 대역은 전파천문학 연구에 많이 쓰이는 주파수와 중첩돼, 전파망원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저궤도에 위성망이 들어서면서 위성과 위성이 충돌하는 '우주 교통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글로벌 기업들은 스타링크처럼 대규모 인터넷 위성망을 구축하기 위해 로켓 발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팰컨9' 로켓에 탑재된 스타링크 위성 60개가 탑재 구간에 정렬한 모습. / 사진=스페이스X
앞서 지난 7월 영국 정부가 지분 45%를 사들인 위성 인터넷 기업 '원웹'은 1개월에 30~36개의 저궤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있다. 이 기업은 총 650개의 위성을 배치해 위성 인터넷 사업을 개시할 계획이며, 장기적으로 1900개 이상의 위성을 추가로 쏘아 올릴 예정이다. 미국 IT 기업 아마존은 최근 저궤도 위성 3236개를 띄워 광대역 인터넷망을 구축한다는 '프로젝트 카이퍼' 추진 계획을 밝혔다.
2020년대 중반까지 저궤도에만 1만7000개가 넘는 위성이 가동되는 셈이다. 또 50~60개로 이뤄진 위성 편대들이 서로 비슷한 고도에서 만나면, 회피 기동을 할 새도 없이 충돌할 위험이 있다.
궤도에서 위성끼리 부딪히면서 발생한 파편으로 인해 지구 궤도 주변에 우주 쓰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 우주 쓰레기들이 지구 궤도 주변을 돌면서 로켓의 발사 경로를 지나다니면, 인공위성 추가 발사나 향후 우주 탐사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위성군의 빛 공해 및 충돌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저궤도 위성군 관련 규제를 담당하는 국제 기관이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천문학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모인 협회인 '국제천문연맹'은 지난 2월 발표한 '거대군집위성이 천체관측에 미치는 영향' 성명에서 "인공위성 밝기, 주파수 대역 등 군집위성에 대해 국제적으로 합의된 규칙이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라며 "'유엔 우주 공간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 등 국제 우주 기관들은 군집위성이 천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류가 지속적으로 우주를 바라보고 연구를 하려면 천문학계와 우주산업체들은 공존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