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 어려운 살인죄 택한 검찰, 판결 땐 아동학대 사건 전환점

범행 고의성 입증 못하면
'무죄' 가능성도 있는 모험
학대치사가 유죄 판결 유용
엄벌 여론에 판례 확립 나서

[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두 여성이 15일 각자 다른 법정에 섰다. 이들은 모두 아동학대 피고인이다. 아이를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범행 방식도 비슷하다. 그런데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받는 이모(44)씨는 아동학대치사, 대전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은 성모(43)씨는 살인 혐의를 받는다. 어떤 혐의냐에 따라 형량이 크게 달라진다. 물론 살인죄가 훨씬 무겁다. 어떤 차이가 있던 것일까.

<div class="qeout_sub"><h3># 아동학대치사죄가 적용된 이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5살 딸을 숨지게 한 혐의다. 여행용 가방에 3시간 동안 가두는 벌을 주다가 생긴 일이다. 아이는 질식사했고 이씨는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살인죄가 적용된 성씨는 지난달 충남 천안에서 동거남의 9살짜리 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7시간 가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아이가 가방에서 나왔을 땐 이미 심장이 멈췄다. 병원으로 옮겨진 사흘 만에 숨졌다. 경찰은 성씨에게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하려 했지만, 검찰이 살인죄를 적용했다.</h3>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검찰의 다른 판단은 '범행의 고의성' 여부에 따른 것이다. 성씨가 아이를 가방에 가두고 아무 구호 조치 없이 방치하면 충분히 사망할 수 있다는 예견이 가능하므로 고의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숨이 안 쉬어진다'고 수차례 호소한 점도 범행의 고의성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씨 역시 판단에 따라 미필적으로나마 고의성을 의심할 순 있다. 그러나 검찰이 이 같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고의성 입증이 쉽지 않아 무죄가 선고될 수 있는 데다 고의성 여부와 상관없이 사망이 발생한 아동학대치사죄를 통해 유죄를 이끌어내는 게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검찰이 성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한 건 일종의 모험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장준성 법무법인 하우 변호사는 "살인의 고의 여부는 심리적 요인에 가까워 객관적 규명이 어렵다"며 "검찰이 재판에서 합리적인 의심이 배제할 정도의 입증에 실패한다면 결국 무죄가 선고되고 피고인의 형사처벌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실제 검찰이 살인죄를 고집하다 무죄 판결이 나온 판례가 있다. 2015년 전남 나주시에서 생후 10개월 된 딸을 때려 숨지게 한 30대 여성에 대해 검찰은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검찰이 이런 위험을 안고도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것은 최근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성씨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양형 기준에서 아동학대치사죄는 학대 정도가 중해도 징역 6~10년이 선고된다. 반면 살인죄는 기본 양형만 10~16년이다. 가중 요소가 부여된다면 사형까지도 가능하다. 즉 살인죄 적용은 국민 법감정에 부합하는 형량을 이끌어내겠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성씨 사건 재판부가 살인죄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다면, 향후 아동학대 사건의 고의성 여부를 다소 넓게 해석하는 판례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검찰이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다루면서 적극적으로 살인죄를 적용하는 사례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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