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산책] 수행하듯 색으로 좋은 기운을 쌓아가다

가나아트센터 허명욱 개인전 '칠漆하다(OVERLAYNG)'

허명욱 개인전 '칠漆하다(OVERLAYNG)' 전시 전경 [사진= 가나아트센터 제공]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허명욱 작가(54)는 아침마다 색 만드는 작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자연에서 얻은 천연재료인 옻에 섞은 여러 염료로 색을 만든다. 그는 이렇게 만든 색을 '그날의 색'이라고 부른다.

"나에게는 그날의 색이 그날의 기운이고 감정이다. 몸이 안 좋을 때는 그날의 색을 만들지 않고 다른 작업을 한다." 그날의 색은 자신의 좋은 기운을 담아 만든 색인 셈이다.

추상화처럼 보이는 허명욱 작가의 작품은 매일 다른 그날의 색을 수십 번 겹쳐 발라 완성한 것이다. 그는 "좋은 기운이 쌓이는 작업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가나아트센터는 오는 28일까지 허명욱 개인전 '칠漆하다(OVERLAYNG)'를 개최한다. 허명욱은 옻칠을 바탕으로 회화·조각·생활공예 등 다양하게 작업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평면 작품 25점, 조각 작품 2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허명욱 작가가 강판 위에 그날의 색으로 만든 색띠 작품을 볼 수 있다. 강판 위에 옻칠하고 여러 차례 오븐기에서 구워 초벌한 다음 색칠하기와 건조를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수행해 완성한 작품들이다. 색띠마다 날짜가 꼼꼼하게 적혀 있다. 그는 "매일 다른 색이 나오기 때문에 날짜를 적어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캔버스 천을 중첩해 쌓은 작품은 천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느낌이 든다. "도자기를 붙일 때도 옻 성분을 사용한다. 그만큼 옻의 접착력이 세다. 그렇기 때문에 굳어지면 딱딱해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옻을 도료로 쓰면 점점 코팅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허명욱 작가 [사진= 가나아트센터 제공]

옻은 건조하기 까다로운 재료다. 허명욱 작가는 전날 칠한 색이 충분히 마르지 않아 그날의 색을 만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렇게 어렵게 완성된 색이 마음에 들 때까지 그는 매일 수행하듯 색을 겹쳐 바른다.

"옻은 그 재료 자체가 시간을 품고 있다. 아무리 한 가지색만을 고집해서 덧칠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자신의 색으로 어김없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장인들은 옻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률적이지 않은 색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하나하나의 색이 각자의 색으로 다시 변하는 매력이 옻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2층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10여분 길이의 영상이 눈길을 끈다. 허명욱 작가가 경기도 용인의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수행하는 듯한 그의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작업실의 큰 창을 배경으로 작업한다. 창 밖에 보이는 자연의 풍경과 허명욱 작가의 작업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창 밖에서는 꽃이 활짝 피었다가 지고,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쌓인다.

하지만 영상의 전면을 차지하는 허명욱 작가의 자세는 늘 똑같다. 반복되는 계절의 흐름과 무관하게 그는 작품 속에 시간을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나의 모든 작업의 공통점은 시간의 축적이고 그날의 감정과 기운이 담긴 그날의 색이다."

허명욱 개인전 '칠漆하다(OVERLAYNG)' 전시 전경 [사진= 가나아트센터 제공]

허명욱 개인전 '칠漆하다(OVERLAYNG)' 전시 전경 [사진= 가나아트센터 제공]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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