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여자랑 마셔야…' '성차별' 오거돈 회식, 다른 회사는 어떤가요

'여성 공무원 성추행'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과거 회식 사진 논란
여가부 조사, 회식 장소서 성희롱 가장 많이 발생
전문가, 성폭력 막을 수 있는 실효성 대책 마련 절실

지난 23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오거돈 부산시장이 여성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는 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연주 인턴기자] #취업준비생 김모(26)씨는 지난 2017년 모 기업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처음 겪어본 회식 문화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직급이 가장 높은 상사가 뒤늦게 자리에 합류하자 다른 상사들이 자연스럽게 여성 인턴들을 불러 양옆에 골라 앉혔기 때문이다. 술잔이 비어있지 않도록 잘 보고 맞춰서 술을 따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김씨와 다른 여성 인턴을 제외하곤 신경조차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김씨는 "드라마나 뉴스에서만 보던 상황이라서 당황스러웠는데 다들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며 "혹여나 위험한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이 돼서 매번 회식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앉아있었다"고 밝혔다.

#직장인 이모(28)씨는 여성 직원들만 골라 술잔 돌리기를 하는 상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신이 술을 마시던 잔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넘겨 차례로 술을 마시도록 하는 게 문화라고 했다. 굳이 여성 직원들만 골라 잔을 돌리는 게 의심이 됐지만, 문제 삼아 득이 될 게 없으리라 생각했을 뿐더러 오히려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까 봐 겁이 났다. 이씨는 "회식 때 여직원들을 옆에 앉히는 건 기본"이라며 "술 따르기, 술잔 돌리기, 건배사 등 2020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회식문화에 회식 기피증이 걸릴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상사가 술에 취하기라도 하면 장난삼아 팔이나 다리를 한 번씩 치는데 자리가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과거 자신 주변으로 여직원 앉히고 술자리 논란

지난 23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성 공무원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를 결정한 후 과거 오 전 시장이 트위터에 올린 회식 자리 사진이 논란에 휩싸였다. 공개된 사진은 2018년 11월 사업소 용역 근로자와 회식 자리에서 찍은 것으로 사진에 찍힌 대부분이 남성이었지만, 오 전 시장의 옆과 맞은편에는 여성이 앉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해당 사진이 논란이 되자 오 전 시장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며 사과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오 전 시장이 사퇴하던 이날 서울시청 소속 직원은 동료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에 따르면 4·15 총선 전날인 지난 14일 저녁 박원순 서울시장 비서실 회식 후 남자 직원이 만취한 동료 여직원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입건됐다. 남성 직원은 시장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회식 자리 '성 차별' 만연…성희롱 빈번하게 발생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했지만 회식 자리에서의 성차별 상황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직원을 옆자리에 앉혀 술을 따르게 하는가 하면,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등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발표하는 '성희롱 실태조사'(공공기관 400개의 직원 2,040명·민간사업체 1,200개의 직원 7,264명) 2018년분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 100명 중 8명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과 비정규직일수록 성희롱을 겪은 비율이 높았다.

성희롱이 발생한 곳은 회식 장소(43.7%)가 가장 많았고 다음은 사무실(36.8%)이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6개월여간 직장인들과 성희롱 방지업무 담당자 등 총 16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성희롱 피해자의 81.6%가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는 비율은 2015년 통계(6.4%)보다 상승했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김모(29)씨는 "회식 2차로 노래방에 갔는데 한 상사가 흥이 올랐다는 이유로 어깨를 감싸고 손을 잡았다"며 "같이 춤을 추자는 말까지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다른 직장인 최모(27)씨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활발했을 때, 여성 직원들하고는 무서워서 말도 못 섞겠다고 한 상사가 그날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몸을 밀착했다"며 "몸을 가눌 수 없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꼭 이런 일은 여성 직원들을 상대로 벌어진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한모(26)씨는 "팀원들이 다 같이 있는 술자리에서 과거 유흥주점에서 회식했던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어나가 표정 관리 하기가 어려웠다"며 "상사들은 '요즘 회식 너무 건전하고 재미없다'는 말까지 했다. 그 상황에서 그만하라는 말이 안 나와서 멋쩍게 웃고 넘겼다"고 했다.

한씨는 "그 얘기를 한 상사들이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분이기에 거기서 화를 내거나 반발하면 되레 저에게 부당한 처우가 올 것 같았다"며 "같은 자리에 있던 여성 직원들도 다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오 전 시장 사퇴 관련해 전문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지율 부산성폭력상담소 상담실장은 27일 'YTN라디오'에서 "권력형 성폭력이든, 이러한 것들이 일어났을 때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독립성이 보장된 기구가 사실은 필요합니다"라면서 "그 기구가 이러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어느 정도 조사도 해야 하고, 2차 피해가 없도록 어떤 방지대책도 해야 하고 할 때 힘 있는 기구가 설치되어야지만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당부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해오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뼈저리게 성찰해봐야 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라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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