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몰렸을 때 드러나는 '밑천'

어제 오후 남ㆍ북ㆍ미 3자 정상회동이 극적으로 성사됐다. 전후 66년 만에 이뤄진 남북한 역사의 획기적 사건이다. 이날 회동은 '온 지구촌의 눈과 귀가 또다시 한반도로 집중되고, 북ㆍ미 수뇌 상봉 소식에 대한 관심과 기대로 온 행성이 열광한(조선 중앙통신)' 말 그대로의 빅 이벤트였다.

이번 회동은 당초 성사 여부를 두고 각 처에서 다양한 예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끈건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유출해 논란을 빚었던 강 의원이 이번에도 자신의 외교ㆍ안보채널을 동원해 판문점 회동 가능성을 알아봤다고 해서다. 결론적으로 그는 북ㆍ미 정상 간의 비무장지대(DMZ) 회동은 어렵고 전화상으로 짧은 안부를 주고 받는 작은 이벤트로 끝날 거라고 주장했다.

아쉽게도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잘못된 예측으로 확인된 후 나온 강 의원의 반응이다. 자신의 예측이 '빗나간 것이 다행'이라는 것이다. 북ㆍ미 정상 회동 가능성에 대해 여론의 관심이 고조될 대로 고조된 상황에서 귀신도 모를 채널과 소식통까지 동원해 내 놓은 예측이 틀렸는데, 틀린 것이 다행이란다.

예측이 맞고 틀리고가 뭐가 중요한 문제이겠는가.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물론 잘못된 예측으로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다. 망신살이야 망신살이고 틀렸으면 틀린 대로 거기에 합당하게 변명이나 해명을 하면 된다. 잘못된 경우는 그저 간단 명료하게 잘못됐다고 시인하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잘못됐는데도 잘못돼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장난 수준으로 말을 바꾸는 태도는 아이를 훈육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영락없는 회초리 감이다.

몰리는 상황에 처했을 때 바탕을 알 수 있고 밑천이 드러난다고들 한다. 공자님 말씀을 가져온다면 궁한 처지에서 군자와 소인배의 처신이 확연이 다르다는 것이다. 군자는 곤경에 처해서도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굳게 지키고, 소인배는 원망이나 후회로 넘쳐 헛발질 한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군자는 곤경에 처해서도 형통하고, 소인배는 망가질 대로 망가지게 된다는 것이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無스펙에 합격한 아들 자랑하다 결국 검찰 수사 받게 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황 대표는 대학생들 앞에서 자기 아들에 대해 3점도 안 되는 학점에 토익 800점 정도로 다른 스펙 없이 졸업했지만 기업에 전부 합격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부정 취업 논란으로 몰리게 되자 황대표는 "학점 3.29, 토익은 925점이다. 낮은 점수를 높게 이야기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반대도 거짓말이라고 해야 하느냐"는 이해하기 힘든 반박을 했다. 이에 청년민중당이 "황교안의 아들이기 때문에 스펙이 없어도 입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며 황 대표를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

또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에 따라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손혜원 의원의 경우는 어떤가.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내 인생과 전 재산, 의원직을 걸겠다. 목숨도 내놓겠다"고 했다. 이번에 검찰이 기소하자 손 의원은 보안 자료를 보여준 목포시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검찰 조사에서 투기 사실이 밝혀지면 의원직을 내려놓겠다더니 "억지스러운 수사 결과"라고 했다.

몰릴수록 엇나가는 이들의 대응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나는 우리 정치판이 소인배들로 넘쳐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류을상 논변과소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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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집부 공수민 기자 hyunh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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