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와 정면승부 그랩, 동남아 '왕좌'에 오르기까지…

[히든業스토리]2012년 하버드 수재 앤써니 탄이 말레이에 설립
불평을 사업 기회로…스마트폰 보급·현금결제 등 승부수
푸드·익스프레스·페이…일상생활에 스며든 '그랩'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동남아시아 승차공유 O2O(온라인 기반 오프라인 서비스)업체 '그랩(Grab)'이 원조를 뛰어넘었다. 세계 최대 승차공유업체 '우버(Uber)'가 지난해 동남아시아(8개 국가) 사업부문을 후발업체인 그랩에 매각하면서 사실상 동남아 시장에서 두손두발을 든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랩은 동남아시아 승차공유 시장 왕좌의 자리에 올라섬과 동시에 우버와 디디추싱에 이은 승차업계 글로벌 3위에 자리했다.

그랩은 지난 2012년 미국 하버드 대학 출신의 수재 앤서니 탄(Anthony Tan)이 말레이시아에 설립한 회사다. 현재 그랩 앱(App)을 다운로드 한 스마트폰은 1억대에 달하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미얀마 등 8개 도시에서 700만 명의 운전자를 확보했다. 1초에 66건의 승차가 이뤄질 정도다.

지금까지 일본 소프트뱅크, 토요타, 중국 디디추싱, 한국의 SK, 현대·기아자동차 등으로부터 75억 달러(약 9조원)를 투자받았고, 최근에는 기업가치 140억 달러(약 16조7000억원)를 인정받아 동남아시아 최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으로 발돋움했다.

불평을 새겨들어 '사업의 기회'로 삼은 창업자

창업자이자 현재 최고경영자(CEO)로 그랩을 이끌고 있는 앤서니 탄은 말레이시아의 질 나쁜 택시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그랩을 창업했다. 2011년 하버드대학 동기가 그를 만나러 말레이시아에 방문했다가 택시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 그랩을 차리게 된 계기다.

실제로 당시 말레이시아 택시는 최악의 서비스로 악명이 높았다. 미터기는 무용지물이었고, '바가지 요금'은 관행처럼 여겨졌다. 탄은 택시기사였던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자동차 수입 사업을 경영 중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운송업에 대해 폭넓은 지식과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친구의 불평을 사업의 기회로 삼았다.

앤서니 탄은 사업계획을 세우다 문득 하버드 재학 시절 사업경연대회에 제출해 수상까지 했던 콜택시 앱(App) '마이택시(My Taxi)'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탄은 2012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그랩의 전신인 '마이택시'를 세우고 앱을 통해 택시를 부르는 방식의 콜택시 개념의 사업을 시작했다.

동남아시아 시장에 특화된 서비스

창업 초기 그랩의 발목을 잡은 건 스마트폰 보급률이었다. 창업 당시 가입 택시기사 수는 고작 40명이었다. 모바일 기반의 서비스인데 저소득층인 말레이시아 택시기사들은 스마트폰을 구비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교육수준이 낮아 최신 기술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고 인터넷이나 GPS(위치파악시스템)조차 이용해본 적이 없는 택시기사들이 대다수였다.

때문에 탄은 직접 공항, 호텔, 주유소 등을 돌며 택시 기사를 모집해야 했다.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사 임원들을 만나 택시기사에 스마트폰 구매비를 보조해 주도록 설득했다.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수입과 승객이 모두 늘어나게 해준다"는 긍정적인 입소문이 번지면서 그랩은 빠른 속도로 가입자를 늘려갔다.

또 그랩은 택시 운전자에게 수수료를 돌려주는 제도도 도입했다. 그랩택시의 수수료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1건당 0.2~0.7달러(약 239~836원) 수준인데 고객과 택시기사에게 받은 수수료 중 일부를 '보조금' 명목으로 운전자에게 돌려준다.

고객 확장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신용카드와 함께 '현금'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사실 동남아시아는 지급결제 10건 중 9건이 현금결제일 정도로 신용카드가 보편화돼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버는 현금결제시스템이 구축돼있지 않았고, 이는 우버가 그랩에 밀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렇듯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그랩은 설립 2년 만에 가입 택시기사 수는 3만 명, 누적 이용객도 20만 명을 기록하면서 말레이시아에서 입지를 굳혔다. 이후에는 필리핀과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 인근 국가로 영역을 넓혔고 일반인 운전자와 오토바이 운전자를 겨냥한 '그랩카', '그랩바이크'까지 출시하면서 설립 6년 만에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우버를 압도할 수 있었다.

푸드, 익스프레스, 페이...일상생활에 스며든 '그랩'

그랩택시로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오른 그랩은 음식 배달 서비스 '그랩푸드'와 물류 배달 서비스 '그랩 익스프레스', 모바일 결제시스템 '그랩 페이' 등 일상생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그랩 관련 앱을 사용 중인 이용자는 전 세계 1억4400만 명이 넘는다. 사실상 '그랩공화국'이 된 것이다.

특히 그랩은 모든 서비스는 결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그랩페이를 필두로 모바일 결제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실제 동남아시아 인구 70%는 은행 계좌가 없어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다가 그랩페이의 등장으로 모바일결제 시장이 급성장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여행사 부킹닷컴과 제휴를 맺고 그랩페이를 통한 숙소 예약·결제 서비스 시행에 나섰고, 소액 대출, 보험업까지 진출하면서 핀테크 업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앤서니 탄은 "앞으로도 그랩 플랫폼을 통해 더 나은 일자리를 제공해 수백만 동남아인의 삶을 개선하고, 이용자에게는 더 많은 선택권과 편리함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테크놀로지 생태계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그랩의 비전을 선포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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