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신원기자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서구권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에는 동양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존재한다. 바로 머리카락 일부만 염색하는 이른바 브릿지 염색이라 불리는 '블리치(bleach, 탈색)'가 그렇다. 수십 년 전 제작된 영화부터 최근 개봉한 영화조차 하나같이 동양인 여성을 블리치 헤어로 그린다. 그 이유가 뭘까.
헐리우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손미-451·틸다 역을 맡았던 배두나는 붉은색 블리치를 했고, 애니메이션 '빅히어로'에서 디즈니 최초로 등장한 한국인 캐릭터 고고도 보라색 블리치를 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엑스맨'에 등장한 중국인 역할의 판빙빙, '데드풀2' 일본인 유키오 역의 쿠츠나 시오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다수 동양인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머리 염색 자체가 미국 할리우드 등 서구권에서 시작된 문화인데다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무렵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동양인들조차 공감하지 못하는 동양인들의 블리치 염색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미국에 정착한 이민 1세대 동양인들의 문화 때문이라는 설이 높은 신빙성을 얻고 있다. 이민 1세대 동양인들은 헤어미용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상당히 많았는데, 이들이 2세대인 자신의 자식들에게 블리치 염색을 해주면서 동양인들의 문화로 굳어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당시 염색이 비싼 서비스였던 만큼 전체 염색 대신 블리치 염색을 해줬으리라는 것도 해당 설에 대한 신빙성을 높여준다.
이 같은 일시적 유행이 미디어 산업에서 전형화된 것은 캐릭터를 만드는 창작자들이 이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설명이 없이도 블리치 염색 하나의 특징만으로 동양인을 묘사할 수 있다. 블리치 염색을 차별이나 비하적 요소로 보기 어렵다는 점도 수십 년 동안 블리치 염색을 동양인의 전형성으로 나타내는 데 무리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동양인들 사이에서는 서구권의 동양인 묘사 방식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묘사로 동양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블리치 염색 외에도 수학을 잘한다거나 태권도, 가라데 고수 등이 동양인의 특성으로 그려지는 건 모두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잘못된 편견으로 인종차별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지난 2017년 BBC방송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사태를 해설한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의 화상 인터뷰 중 기습 침투한 아이들을 급히 데리고 나간 동양인 여성이 논란이 됐다. 대다수 세계인이 해당 여성을 아무런 근거가 없이 '보모' 추정했고, '보모'라고 단정 지은 외신 보도들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 동양인 여성은 아이들의 엄마이자 켈리 교수의 아내였다. 당시 수많은 누리꾼은 서양인들의 무의식적 편견이 만들어낸 씁쓸한 풍경이라고 지적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