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윤기자
이호현·김소정씨 커플이 지난달 30일 텅 빈 예식장 주례석을 바라보고 있다. 둘은 지난해 하려던 결혼을 경제적 사정으로 두 차례나 미뤄야 했다.(사진=송승윤 기자)
[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이호현(30ㆍ가명)씨와 김소정(30ㆍ가명)씨 커플은 주례도, 하객도 없는 텅 빈 예식장 버진로드에 단 둘이 섰다. 기껏해야 20m 남짓한 그 길을 통과해 부부가 되는 게 그렇게 어려울 줄 꿈에도 몰랐다.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행진하는 모습을 그리며 잠시나마 가슴 벅찬 감정을 느껴도 봤지만 동시에 덜컥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언젠가 우리도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율은 48.1%로 2년 전인 51.9%보다 3.8%포인트 줄었다. 20년 전인 1998년에는 이 비율이 무려 73.5%였다. 이 통계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청년들이 매우 많아졌다는 뜻일까.그보다는 "결혼을 반드시 또는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의 비율이 현실을 더 잘 알려준다. 이렇게 응답한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결혼이 필수라는 인식이 흐려진 것도 맞지만, 이씨와 김씨 커플처럼 "상황만 된다면 하고 싶다, 그러나 할 수 없다"는 청년이 상당수임을 방증한다.웨딩 업체 상담을 받는 이호현·김소정씨 커플.(사진=송승윤 기자)
양쪽 모두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다. 직장 생활 3년 만에 둘이 모은 돈은 30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집은 대출을 최대한 받아 해결하더라도 신혼여행이나 혼수 등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따져보면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이들이 지난달 30일 한 예식장을 찾은 것도 결혼식 비용을 대충이라도 알아보려는 취지였다. 점점 옅어져가는 결혼에 대한 확신과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고, 현실에 첫 발이라도 내딛고 싶단 생각도 컸다.이씨와 김씨는 자신들의 처지가 지금 이 사회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는 말도 여러 번 했다. 이씨는 "주변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결혼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라면서 "우리처럼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경우라면 조금 더 안정될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주변 친구 중에는 오랜 기간 잘 사귀다가 결혼 시기가 다가오면서 현실을 깨닫고 아예 헤어지는 커플도 많이 봤다"고 씁쓸히 웃어보였다.그들은 예식장을 돌아다니는 내내 '웨딩 플래너'가 내미는 계약서에 금방이라도 사인을 할 것처럼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예식장을 나와 복잡한 거리에 선 두 사람의 얼굴에는 금세 근심이 드리워졌다. "결혼식은 어떻게 가능할 것 같은데…. 근데 집은 어떡하지?"(이씨) "좀 더 자리 잡으면 다시 와보자."(김씨)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