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강남역·PC방·고시원…이 추모 열기는 무엇인가

각종 사건·사고 시민들 추모 잇따라
단순 추모가 아닌 사회 정책 변화로
전문가, 사회적 약자 사고 분노…‘나도 당할 수 있다’는 심정

11일 오전 화재로 7명이 사망한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시민들의 추모 꽃이 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가난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소서”, “쪽방, 고시원, 여인숙…. 반복되는 빈곤층 주거지 화재 참사의 재발 방지 촉구합니다”지난 9일 새벽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 추모가 오늘(12일)도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에 대한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추모 열기와 더불어 사회적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도 시민들의 추모 발길은 이어졌고 비정규직 개선 등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다. 또 같은 해 ‘강남역 살인사건’도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지면서 여성 정책 개선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지난달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역시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야간 알바 처우 개선’ 정책의 지적이 나왔다.전문가는 내가 아닌 타인의 안타까운 사고에서도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하면서 한편으론 반발 심리도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6년 6월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도중 숨진 김모(당시 19)씨의 사고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메시지. 사진=연합뉴스

◆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비정규직 정비원 정규직 전환…고장 건수 절반으로“네 죽음이 네 잘못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였음을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구의역 스크린도어 김 군 사망 사건 2주기를 앞두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련 시민단체 등이 구의역에서 추모제를 열고 고인의 넋을 달랬을 때 나온 말이다. 한 개인의 잘못, 한 기업의 단순 사고가 아닌 사회적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김 군과 같은 스크린도어 정비업체에서 일했던 동료들은 추모 편지를 통해 “네가 허망하게 떠난 이후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변하고 있다”며 “이율과 효율보다 생명과 안전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이들은 “노동자들은 외주화와 용역이 아닌 직고용, 나아가 정규직이 돼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다”며 “꽃다운 스무 살이던 너의 죽음이 가져다준 대가라기엔 보잘것없지만, 이런 노력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 개인의 사고가 아닌 사회적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시민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직원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2년, 서울시는 외주 직원이었던 정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안전 시스템과 매뉴얼을 보강한 결과 스크린도어 고장 건수가 당시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2016년 5월 서울 서초구 강남역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모하는 추모 공간.사진=연합뉴스

◆ 강남역 살인사건…“나는 살아남았다” , 여성부 “미투·디지털 성범죄 강력 처벌할 것”강남역 살인사건 추모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은 당시 사건이 발생한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아가 자발적으로 포스트잇 붙이면서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이는 35,000건에 달한다.여성들은 추모 메시지를 통해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라고 말하면서 ‘사회적 공론화’를 끌어냈다. 한 개인이 죽임을 당한 단순 사건이 아닌 ‘여자’라서 당했고, 이는 나 역시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사회적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여성들의 추모 물결 이후 실제로 사회는 여성 폭력에 대해 각종 토론과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구조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올해도 이어졌다. 지난 5월17일 340여개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투(#MeToo) 운동과 함께하는시민행동’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에서 ‘성차별·성폭력 4차 끝장 집회’를 열었다.주최 측 추산 2,000여 명의 참석자들이 자리를 지켰고 이들은 “국가와 사회는 미투 운동의 요구에 응답해 법과 제도를 즉각 개선하고 관습과 관행을 바꿔야 하며 시민들은 일상의 성 평등을 위해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주권자의 절반을 배제한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성 평등이 빠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목소리는 ‘혜화역 집회’로도 이어졌다.당시 서울시와 시 여성가족재단은 ‘성평등정책·현장자료 디지털아카이브시스템’을 통해 강남역 살인 사건 추모 메시지를 포함한 여성사 관련 주요 자료를 디지털화해 시민들에게 공개했다.한편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인 ‘미투(Me Too)’와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범정부 컨트롤타워를 가동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진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 모두 발언을 통해 “성별 임금격차, 낮은 여성대표성 등 성차별적 구조와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고, 여성과 아동의 안전을 위협하는 성희롱·성폭력, 디지털성범죄 등 여성폭력에 대한 보다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며 “관련 법률의 제·개정을 신속히 추진해 처벌 등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및 디지털 성범죄 근절추진협의회를 통해 범정부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22일 오전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 앞 흉기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아르바이트생을 추모하는 공간에 추모하는 국화가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어른들이 좋은 세상 만들지 못해서”, 국회 ‘야간알바 보호 4법’ 발의“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어른들이 좋은 세상 만들지 못해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지난달 14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위치한 한 PC방에서 벌어진 아르바이트생 살해사건 역시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이들은 살해당한 아르바이트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며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동시에 가해자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을 수 없다며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은 100만 동의를 넘어섰다. 사상 초유의 기록이었다.이 가운데 한 언론을 통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자 사건 현장에 있던 동생 역시 공범이 아니냐는 사회적 공분이 이어졌다. 당초 경찰은 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 등 수사 상황을 종합했을 때 공범이 아니라고 판단 구속 수사를 하지 않았다.하지만 국민적 공분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공범 여부 수사 목소리가 커지자, 경찰은 의혹된 부분에 대해서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민들의 추모 열기와 사회적 공분이 맞물리면서 경찰의 수사 계획이 바뀐 셈이다.당시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의혹에 대해 영상 분석을 더 세밀히 해서 공범 여부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강서 PC방 살인범 엄벌' 국민청원 100만명 돌파.사진=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경찰은 피의자 김성수(29)의 동생 김 모(27살) 씨를 상대로 지난 8일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진행했다고 오늘(12일) 밝혔다. 동생 김 씨의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는 이번 주 중 발표될 예정이다.또 시민들의 이런 추모 물결은 실제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PC방과 편의점 등 야간 다중이용업소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안전보장을 위한 이른바 ‘야간알바 보호 4법’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개정안 내용은 PC방과 편의점 등 사업주가 근로자 신변보호를 위한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근로자가 야간에 예측하지 못한 공격을 당할 경우 버튼을 통한 신고가 가능하도록 한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전문가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지는 각종 사건·사고에 대한 시민들의 추모 열기에 대해 ‘남 일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추모 열기에 대해 “시민들이 힘들어하는 소외 계층, 억울한 죽음에 대한 추모로 볼 수 있다”며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억울한 상황에 놓인 것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용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곽 교수는 “그러면서 동시에 누구든지 그런 억울한 상황에 노출될 수 있고, 일종의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라는 심정도 있다”며 “이런 이유로 애도와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시민들의 이런 목소리를 잘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한승곤 기자 hs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팀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